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Marcus Aemilius Lepidus)는 고대 로마 역사에서 흔히 간과되는 인물입니다. 일부에서는 그가 로마 지휘권 서열 2위이자 최고의 인물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삼두정치의 세 번째 인물
레피두스는 옥타비아누스(훗날의 아우구스투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함께 제2차 삼두정치를 구성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휘 체계에서 2위가 아니라 3번째 자리에 있었습니다.
기원전 43년 성립된 이 삼두정치에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실질적인 주도권을 쥐었고, 레피두스는 두 사람에 비해 군사력과 정치적 기반이 크게 열세였습니다.
레피두스의 위상과 한계
레피두스는 대폰티펙스(Pontifex Maximus)로서 종교적 권위를 누렸으며, 북아프리카 영토를 관할하며 나름의 입지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명예직에 가까운 위상이었을 뿐, 두 동료와 대등한 권력자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는 기원전 36년 시칠리아를 차지하려다 옥타비아누스에게 축출되면서 삼두정치에서 배제되었고, 이후 생애 말년까지 정치 무대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됩니다.
결론
레피두스는 로마 삼두정치의 공식적인 구성원 중 하나였지만, 결코 '2인자' 혹은 '최고'의 지위에 있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다음가는, 즉 세 번째 서열의 인물이었다는 점이 역사적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