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퀴즈

2차 세계대전 런던 대공습, 시민들은 어디로 피신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폭격이 잇따르던 '더 블리츠(The Blitz)' 기간, 런던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다양한 장소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들이 찾은 피난처는 지하철역부터 교회까지 도시 곳곳에 있었으며, 상황에 따라 여러 대피 공간을 번갈아 활용했습니다.

런던 지하철역, 가장 인기 있는 대피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은 곳은 단연 런던 지하철(Underground) 역이었습니다. 깊게 파인 터널과 승강장은 폭탄의 충격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했기 때문에, 밤마다 수많은 시민이 플랫폼에 이불을 펴고 잠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부가 지하철 대기를 통제하려 했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몰림을 막지 못하고 결국 공식 대피소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공공 건물과 전용 방공호

정부와 지자체는 학교, 체육관 등 공공·시립 건물을 방공호로 개조해 시민들에게 개방했습니다. 또한 거리 곳곳에는 목적으로 지어진 공습 대피용 방공호가 설치되어, 집 근처에 숨을 곳이 없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건물 지하와 마당 속 방공호

아파트나 상점의 지하는 간편한 피난처였습니다. 폭경보가 울리면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몸을 숨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주민들은 자신의 뒷마당에 소규모 방공호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얇은 금속판을 조립하고 흙으로 덮어 폭발 충격을 줄이는 구조의 '앤더슨 쉘터(Anderson shelter)'입니다.

교회와 지하 생활

상황에 따라서는 교회가 열려 있는 경우 잠시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폭격이 가장 심했던 시기에는 아예 지하에서 잠자는 삶을 이어간 사람들도 있었고, 매일 밤 방공호로 내려가 새벽까지 버티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런던 시민들은 지하철역, 공공건물, 전용 방공호, 건물 지하, 마당의 방공호, 심지어 교회까지 두루 활용하며 끊임없는 공습 속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이러한 대피 문화는 오늘날까지 런던의 전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페이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