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6월 5일에 발발한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충돌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여러 아랍 국가가 연쇄적으로 전쟁에 휘말리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요르단의 참전 배경은 복잡한 동맹 관계와 오해, 그리고 잘못된 정보가 얽혀 있었습니다.
아랍 국가들의 상호방위 조약 체결
당시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되던 가운데, 이집트는 시리아와 상호방위 조약을 체결했고, 요르단 역시 이라크와 방위 협정을 맺으며 아랍 진영 내 연대를 강화해 나갔습니다.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의 요청에 따라 군대를 파견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억지력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적 동원은 이스라엘에게 '곧 닥칠 선제공격의 전조'로 비치게 되었고, 결국 1967년 6월 5일 전쟁이 발발하는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불개입을 선언했던 후세인 국왕
흥미로운 점은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이 애초에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자국은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는 사실입니다. 즉, 요르단은 처음부터 전쟁에 휘말릴 의사가 없었던 셈입니다.
전쟁의 시작과 요르단의 불가피한 참전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6월 5일 아침, 이스라엘 공군이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요르단군 진지는 물론, 요르단 본토 깊숙한 곳에 있는 도시들까지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에 요르단 포병부대는 즉각 응사하며 반격에 나섰고, 이렇게 해서 요르단은 사실상 선택의 여지 없이 전쟁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휴전 요청과 이스라엘의 거부
전황이 확대되자 아랍 연맹은 즉시 휴전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쟁 주도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은 이 요청을 거부했고, 전쟁은 계속되어 단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압도적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요르단 참전의 교훈
요르단의 사례는 동맹 관계와 잘못된 정보, 그리고 예측 못한 상대방의 공격이 어떻게 한 국가를 원치 않는 전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결과적으로 요르단은 서안 지구를 상실하는 등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