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탄생이 촉발한 왕위 계승 위기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2세의 두 번째 아내인 모데나의 메리(Mary of Modena)가 1688년 아들을 출산하면서 정국은 급격히 흔들렸습니다. 당시 잉글랜드 개신교도들은 제임스의 장녀이자 개신교 신앙을 지닌 메리(훗날의 메리 2세)가 왕위를 계승하리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였던 제임스에게 아들이 태어나면서 이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고, 왕위가 다시 가톨릭 계통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반발하는 반란은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귀족들의 초청과 윌리엄의 상륙
1688년 6월, 잉글랜드 유력 귀족들은 오라녜 공 윌리엄에게 잉글랜드로 진군하여 제임스 2세를 축출해 줄 것을 비밀리에 요청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윌리엄은 네덜란드 함대와 14,000명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데번주(Devon)의 브릭섬(Brixham)에 상륙했습니다. 그는 의회 중심의 통치를 지향하는 군주로 제임스를 대체하기를 바라던 잉글랜드 귀족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정작 제임스 2세를 지켜야 할 군대마저 대거 이탈하면서 그의 입지는 완전히 무너졌고, 결국 제임스는 같은 해 12월 23일 프랑스로 피신했습니다.
공동 통치자의 즉위와 권리장전
1689년 4월 11일, 윌리엄과 메리는 잉글랜드의 공동 통치자로 함께 즉위했습니다. 이 사건은 큰 유혈 사태 없이 왕권이 교체되었다 하여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라 불립니다.
즉위 후 두 사람은 권리장전(English Bill of Rights)을 제정하여 군주의 권력이 의회에 의해 제한된다는 원칙을 공식적으로 확립했습니다. 또한 개신교 비국교도(Protestant Dissenters)에 대한 종교 박해를 종식시키며 종교적 관용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영국 입헌군주제의 초석이 된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