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여황제 부란두흐트(페르시아어: بوراندخت)는 극도로 불안정했던 시기인 630년부터 632년까지 약 3년간 재위에 올랐습니다. 현명하고 정의로웠던 그녀는 정의 회복과 국가 기반 시설 재건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시대
부란두흐트는 590년부터 628년까지 페르시아를 통치한 황제 호스로우 2세 파르비즈(Khosrau II Parviz)의 딸로, 여동생 아자르메두흐트(Azarmedûkht)와 함께 이란을 4백 년 가까이 다스린 사산 왕조의 후손입니다. 부란두흐트는 '붉은 빛 얼굴의 소녀'라는 의미를 지닌 푸란도흐트(Pūrāndokht)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7세기 초, 비잔티움-페르시아 전쟁이 격화되면서 비잔티움 군대의 진격에 밀린 호스로우 2세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어린 아들 중 한 명을 후계자로 세우려 했으나, 전제적이고 나태한 통치 탓에 귀족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628년 2월 25일 장남이 새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호스로우 2세는 사흘 뒤인 2월 29일 암살당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즉위한 새 왕마저 페스트로 목숨을 잃습니다. 630년에는 샤르바라즈(Shahrbaraz) 장군이 권력을 장악했는데, 일부 역사가들은 그가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란두흐트와 결혼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630년 6월 9일 암살되고 맙니다.
짧았던 재위
이렇게 하여 부란두흐트는 여황제로 즉위하지만, 제국의 정치 상황은 여전히 매우 불안정했고 전임 황제의 아들이 권력 찬탈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정의롭고 현명했던 여황제는 비잔티움과 강화 조약을 체결하여 외교적 안정을 도모하고, 정의 회복과 인프라 재건에 힘썼습니다. 그녀는 세금을 경감하고 화폐를 주조하는 등 개혁을 추진했지만, 지방 총독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왕권을 회복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동생 아자르메두흐트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됩니다. 그러나 새 여왕은 왕좌를 독점하려던 귀족을 제거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귀족의 아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며 아자르메두흐트를 살해합니다.
동생의 죽음 이후 부란두흐트는 다시 왕좌에 복귀합니다. 그러나 이 무렵 시작된 아랍의 정복 전쟁으로 사산 왕조 군대는 631년부터 연이은 패배를 겪으며 급속히 무너져 내립니다. 왕조가 피할 수 없이 멸망의 길을 걷던 가운데, 부란두흐트는 두 번째 재위 2년 만인 632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