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장 란(1769~1809), 나폴레옹이 사랑한 '군대의 롤랑'

용맹으로 이름을 얻다 — 스페인 전역

장 란(1769~1809), 나폴레옹이 사랑한  군대의 롤랑

1795년 스페인 전역에서 장 란(Jean Lannes)은 남다른 용기를 보여주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무용담은 곧 널리 퍼졌고, 사람들은 그에게 '군대의 롤랑'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중세 기사 서사시의 영웅 롤랑에 빗댄 이 이름은 그가 얼마나 대담한 군인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탈리아와 이집트, 상처투성이의 영광

란은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에 참전하여 로디 다리 전투에서 활약했고, 아르콜 전투에서는 적의 총탄 두 발을 몸에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보나파르트를 따라 이집트 원정까지 함께했으며, 성 장 다크르(아크레) 공방전에서 또다시 부상을 입었다.

마렝고의 명예 검과 아우스터리츠의 좌익 지휘관

마렝고 전투에서 세운 무공을 인정받아 그는 명예의 검(sabre d'honneur)을 수여받았다. 이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는 무라(Murat) 곁에서 좌익을 지휘하며 프랑스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당대 최고의 전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힌 그는 나폴레옹 휘하에서 가장 신뢰받는 지휘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보나파르트 가문과의 인연

란은 한때 카롤린 보나파르트와의 혼담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비록 결혼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나폴레옹 본인은 그를 끝없이 칭찬했고 란은 황제가 가장 가까이 여긴 친구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계급과 예법보다 진심으로 통하는 우정이었다고 전해진다.

에슬링에서의 최후

그러나 그의 영웅 서사는 1809년 에슬링(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서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포탄 파편에 치명상을 입은 란은 며칠 뒤 40세의 나이로 숨졌다. 나폴레옹은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전쟁이 두렵습니다"

란은 생전에 나폴레옹에게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저는 전쟁이 두렵습니다. 전쟁의 첫 소리만 들어도 몸이 떨립니다. 사람들은 죽음으로 더 잘 이끌기 위해 정신을 잃는 것입니다."
무적의 용사라 불리던 그조차 전쟁의 공포를 누구보다 선명하게 느꼈다는 이 고백은, 화려한 무공 뒤에 숨겨진 인간 란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