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베를렌(Paul Verlaine, 1844-1896) 짧은 전기 — 음악성 넘치는 작품 세계와 열정과 비극이 뒤얽힌 운명으로, 그는 19세기 프랑스 시단에 가장 주목할 만한 자취를 남긴 시인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그의 이름은 아서 랭보(Arthur Rimbaud)와의 만남 덕분에 영원히 기억되고 있는데, 두 사람은 유황처럼 위험하고 알코올에 절은 격정적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그의 작품은 조용한 행복에 대한 갈망과 병적인 쾌락으로의 도피라는 존재의 이중성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사망 3년 전인 1893년, 그는 동시대인들에 의해 '시인의 왕자(Prince des Poètes)'로 추대되었습니다.
베를렌의 전기
1844년 3월 30일 메츠(Metz)에서 태어난 폴 베를렌은 부유한 부르주아 가정의 외아들이었습니다. 특히 장교였던 아버지를 비롯한 부모는 그를 독실한 가톨릭 전통 속에서 키웠습니다. 어린 폴은 이른 시기부터 자신의 동성애적 기울기를 자각했으며, 한동안은 부모와 함께 살던 사촌 에리자 몽콩블(Élisa Moncomble, 자신보다 8살 위)에 대한 사랑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베를렌은 파리 시청의 평범한 직원으로 일하며, 그 공백을 예술 활동으로 메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써온 그는 1865년부터 테오도르 드 방빌(Théodore de Banville), 프랑수아 코페(François Coppée) 등의 시인들과 교류했고,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를 열렬히 존경했습니다. 1866년에는 시집 《현대 파르나소스(Parnasse contemporain)》 첫 권에 작품을 기고했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은 파르나스 시파의 영향을 보여주지만, 이미 매우 개인적인 형식적·음악적 탐구가 돋보입니다. 그는 당대의 관습보다 더 자유롭고 덜 장식적인 운율을 구사했습니다. 그림 같고 밝은 외부 세계의 묘사(《우아한 연회(Fêtes galantes)》에서처럼)와 한층 우울한 내면의 감정을 능숙하게 혼합함으로써, 그는 보들레르적 주제를 반영하면서도 확고한 독창성을 입증합니다.
저주받은 시인, 베를렌과 랭보
1869년 베를렌은 16세의 부르주아 처녀 마틸드 모테(Mathilde Mauté)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에게 순수에 대한 갈망과 우수 어린 매력이 서린 시집 《우아한 연회(Les fêtes galantes)》를 바쳤습니다. 1870년 두 사람은 결혼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베를렌은 공동 채무를 지게 되었고 시청의 직장도 잃습니다. 그 무렵, 그의 시를 존경한다며 자신의 시를 보내온 젊은 낯선 이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바로 아서 랭보였습니다.
청년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은 베를렌은 랭보를 자신의 집으로 들였고, 두 사람의 우정은 이내 육체적 열정으로 번졌습니다. 이 관계는 두 연인의 알코올 중독과 잦은 폭력 사건으로 얼룩졌습니다.
1872년 여름, 베를렌은 아내를 두고 랭보와 함께 도주합니다. 두 사람의 방랑은 영국과 벨기에까지 이어졌고, 이 시기의 다양한 경험은 그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 《말없는 노래(Romances sans paroles)》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험도 길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베를렌은 랭보에게 리볼버를 발사해 가벼운 부상을 입혔고, 랭보는 이를 고소했습니다. 결국 베를렌에게는 징역 2년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개종자의 몰락
자유를 빼앗기고 단조로운 노역에 시달리는 동안, 베를렌은 수감 생활 속에서 위안이 될 확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신비주의적 색채가 짙은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이 경험은 유명한 시집 《지혜(Sagesse)》(1880)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1884년에는 유명한 《시의 기술(Art poétique)》이 실린 《예전과 근일(Jadis et Naguère)》을 출간했습니다.
출옥 후 베를렌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교사로 지내며 소박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일찍 요절한 제자 뤼시앵 레티누아(Lucien Létinois)와의 우정은 그의 후기 작품에 깊은 슬픔을 자아내는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의 재능은 인정받았지만(그야말로 '시인의 왕자'였지 않은가?), 병들고 궁핍한 말년은 그를 거의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그의 작품 역시 점차 질이 떨어져 갔습니다. 1896년 1월 8일, 지나친 열정과 결코 충족되지 못한 지혜의 추구 사이에서 분열된 삶에 지친 그는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베를렌의 주요 작품
- 1866년: 《토성의 시(Poèmes saturniens)》
- 1869년: 《우아한 연회(Fêtes galantes)》
- 1870년: 《좋은 노래(La Bonne Chanson)》
- 1874년: 《말없는 노래(Romances sans paroles)》
- 1880년: 《지혜(Sagesse)》
- 1884년: 《예전과 근일(Jadis et Naguère)》
- 1889년: 《나란히(Parallèlement)》
참고문헌
- Paul Verlaine, 『폴 베를렌 전체 시집(Œuvres poétiques complètes)』, 라포쇼텍(La Pochothèque), 1992.
- Christophe Dauphin, 『베를렌, 숭고함의 하층 세계(Verlaine ou les bas-fonds du sublime)』,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