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백년전쟁의 숨은 주역, 클리송의 올리비에(1336~1407)

백년전쟁의 숨은 주역, 클리송의 올리비에(1336~1407)

백년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지만, 오늘날에는 의외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대귀족이 있다. 바로 올리비에 드 클리송(Olivier de Clisson, 1336~1407)이다. 브르타뉴 출신의 그는 브르타뉴 상속 전쟁에 참전해 이름을 알렸고, 훗날 프랑스 왕국의 콩스타블(대원수)이 되어 샤를 6세 초기 정치의 중심에 섰다. 전장에서 드러낸 무자비함 탓에 '도살자(le Boucher)'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짚어본다.

브르타뉴 상속 전쟁, 그리고 오레의 승리

클리송의 군사 경력은 브르타뉴 공작위 계승을 둘러싼 내전, 이른바 '브르타뉴 상속 전쟁'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 전쟁에 참전해 실전 감각을 갈고닦았으며, 1364년 9월의 오레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그가 속한 몽포르 진영은 프랑스 국왕의 지원을 받던 블루아 진영의 군대를 격파했고, 당대 최고의 명장 베르트랑 뒤 게클랭이 포로로 잡히는 충격적인 결과가 빚어졌다.

그러나 승리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뒤 브르타뉴 공작은 잉글랜드와 손잡는 길을 택했고, 이는 자신의 영주였던 공작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기로에 클리송을 세웠다. 그는 결국 공작을 떠나 프랑스 왕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과거 오레 전장에서 마주했던 적장 뒤 게클랭과 손을 잡아 함께 원정에 나섰다. 적이었던 두 명장의 동맹은 이후 프랑스군이 잉글랜드군을 몰아내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도살자'라 불린 무인

클리송은 뛰어난 용맹과 지휘력을 갖춘 전사였지만, 동시에 전투에서 보여주는 잔혹함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적에게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는 그의 전투 방식은 사람들에게 '도살자(le Boucher)'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강경함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프랑스 왕 필리프 6세에 의해 처형당하는 비극을 겪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샤를 6세의 콩스타블, '마르무제'의 일원

1380년, 클리송은 샤를 6세에 의해 프랑스 왕국군 전체를 총괄하는 최고 사령관인 콩스타블로 임명되었다. 브르타뉴 출신 귀족으로서는 이례적인 영예였다. 그는 샤를 5세 사후 국정에 복귀한 소규모 정책 그룹 '마르무제(Marmousets)'의 일원으로서 어린 왕을 보좌하며 왕국 통치의 실무를 맡았고, 재정과 군제 개혁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잉글랜드 침공이라는 대담한 꿈

클리송이 남긴 가장 극적인 구상은 단연 잉글랜드 침공 계획이다. 그는 대규모 함대를 동원해 영국 해협을 건너려 했고, 나아가 거대한 목조 구조물을 만들어 수상 요새처럼 활용하는 파격적인 작전을 추진했다. 1386년 슬뤼스 항에 집결한 함대와 함께 준비된 이 목조 성채는 당대 사람들에게 경탄과 회의를 동시에 불러일으켰으나, 결국 실제 침공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계획은 백년전쟁기 프랑스가 얼마나 공세적으로 전환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남는다.

1407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클리송은 브르타뉴, 프랑스, 잉글랜드 사이에서 진영을 옮기며 살아간, 시대의 혼란을 그대로 체현한 인물이었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백년전쟁의 화려한 주인공들만큼 유명하지 않지만, 전쟁의 흐름을 바꾼 핵심 인물 중 하나로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