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젤란 탐험대는 1520년 3월 말 아르헨티나 연안의 산훌리안(Puerto San Julián)에 도착했고, 곧이어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반란을 진압한 뒤 실제로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기까지는 무려 8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단순히 '게으른 휴식'이 아니라, 여러 현실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는데요. 그 배경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남반구의 혹독한 겨울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계절이었습니다. 산훌리안은 남위 49도 부근에 위치해 있어, 북반구가 봄을 맞던 4월 무렵 남반구에는 혹한의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파타고니아 연안의 겨울은 강풍과 폭설,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으로 악명이 높았고, 이 시기에 좁고 물살 거센 해협을 돌파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마젤란은 함대 전체의 안전을 위해 겨울이 끝나는 10월까지 월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선박 수리와 보급 준비
수개월에 걸친 대서양 항해와 반란 과정에서 함대의 상태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마젤란은 긴 월동 기간을 활용해 돛을 보수하고 손상된 돛대를 교체했으며, 선체의 전반적인 항해 적합성을 점검했습니다. 또한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해협 통과를 대비해 식량과 물, 예비 부품 등 보급품을 최대한 확보했습니다. 특히 '산 안토니오호'가 반란 과정에서 나포된 후 함대의 물자 배분 문제도 재정비해야 했습니다.
3. 정찰과 항해 계획 수립
마젤란은 해협 진입 전에 산훌리안 주변 지역을 꼼꼼히 탐사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간 보내기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이 해역은 완전히 미지의 세계였고, 해협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젤란은 연안의 지리적 특징을 기록하고 잠재적 위험 요소를 파악했으며, 필요시 수리와 재보급이 가능한 거점을 미리 확인해 두었습니다.
4. 승무원 사기와 규율 회복
반란 직후 함대 내부의 분위기는 극도로 험악했습니다. 마젤란은 반란 주동자들을 처형하고 방치함으로써 질서를 회복했지만, 살아남은 승무원들의 불신과 두려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은 항해 동안 선원들이 자신에게 충성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신중한 외교와 소통, 그리고 필요하다면 단호한 제재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흔들린 조직을 다시 하나로 결속시키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5. 전략적 판단과 정보 수집
마젤란은 성급하게 해협에 뛰어드는 대신, 상황을 면밀히 평가하며 기다렸습니다. 원주민들과의 접촉을 통해 연안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해협 통과에 필요한 추가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스페인 본국에서 증원이나 물자가 올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지만, 결국 도움은 오지 않았고 마젤란은 자신이 가진 정보와 판단에 의존해 출발을 결심해야 했습니다.
결론: 8개월의 공백은 필연이었다
결론적으로 산훌리안 반란과 마젤란 해협 항해 사이의 8개월은 단일한 원인보다는 남반구 겨울이라는 자연 조건, 선박 수리와 보급, 철저한 정찰과 계획, 승무원 규율 회복, 전략적 판단이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이 꼼꼼한 준비 덕분에 마젤란 함대는 1520년 10월~11월,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선박이 태평양으로 통하는 해협을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