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서기 886년에 분할되었다'는 설명은 엄밀히 따지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 무렵에는 아직 통일된 국가로서의 '잉글랜드(England)'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가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된 것은 10세기, 927년경 애설스탠(Æthelstan)의 치세에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886년은 잉글랜드 역사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를 지니는 해였습니다.
886년에 실제로 일어난 일
886년, 웨식스(Wessex)의 알프레드 대왕(King Alfred the Great)은 데인족(바이킹)이 점령하고 있던 런던을 탈환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앵글로색슨 계열 왕국과 데인족 지배 지역 사이의 경계선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886년의 분할'이라고 부르는 사건의 실체입니다. 이 경계 설정은 '알프레드와 구스룸의 조약(Treaty of Alfred and Guthrum)'으로 문서화되었으며, 널리 알려진 '웨드모어 조약(Treaty of Wedmore)'의 실질적 내용으로 간주됩니다.
웨드모어 조약의 배경: 에딩턴 전투
조약의 뿌리는 8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865년부터 잉글랜드를 유린해 온 '대이교도군(Great Heathen Army)'은 여러 앵글로색슨 왕국을 차례로 무너뜨렸고, 웨식스마저 위기에 몰렸습니다. 그러나 878년 에딩턴 전투(Battle of Edington)에서 알프레드 대왕은 데인족 지도자 구스룸(Guthrum)을 결정적으로 격파했습니다. 패배한 구스룸은 기독교 세례를 받고 웨식스에서 철수하기로 약속했으며, 이 합의가 이른바 웨드모어 조약입니다.
데인로(Danelaw):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뉜 땅
이러한 일련의 합의에 따라 잉글랜드 땅은 사실상 두 영역으로 나뉘었습니다. 남서부는 알프레드가 다스리는 앵글로색슨 왕국의 영토로 남았고, 북동부의 광대한 지역은 '데인로(Danelaw)', 즉 데인족의 법과 관습이 지배하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데인로는 단순한 군사 점령지가 아니라 독자적인 법체계와 사회 질서를 갖춘 지역으로, 이후 잉글랜드의 언어·문화·법률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분열에서 통일로: 잉글랜드의 탄생
이렇게 나뉜 상태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알프레드의 후계자들은 데인로 지역을 차례로 수복해 나갔고, 927년 알프레드의 손자 애설스탠이 마침내 노섬브리아까지 통합하며 최초의 '잉글랜드인의 왕(King of the English)'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로써 비로소 통일 잉글랜드 왕국이 성립했습니다.
정리하자면, 886년은 '영국의 분할'이라기보다 앵글로색슨 세력과 데인족 세력 간의 경계가 공식화된 해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에딩턴 전투와 웨드모어 조약, 그리고 알프레드 대왕의 군사적·외교적 역량이 만든 이 균열은 오히려 훗날 통일 잉글랜드가 탄생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