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6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훗날 '정복자 윌리엄')이 이끄는 노르만 군대가 잉글랜드를 침공하려 하자, 해럴드 왕은 왕국을 지키기 위해 치밀한 방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의 전략은 크게 일곱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피르드(Fyrd) 동원
해럴드 왕은 앵글로색슨 민병대인 '피르드'를 소집하여 런던에 집결시켰습니다. 앵글로색슨 군대의 핵심이었던 대규모 보병 부대를 최대한 모아 윌리엄 공작의 침공군에 맞서려 한 것입니다.
2. 전략적 배치
노르만군이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는 잉글랜드 남부 해안의 요충지에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실제로 윌리엄이 상륙한 페번시(Pevensey)를 비롯해 다른 잠재적 상륙 지점에도 군대를 주둔시켜 만반의 태세를 갖췄습니다.
3. 방어 시설 구축
흙벽과 목책 등 방어 구조물을 건설해 진지를 보강했습니다. 이는 노르만군의 핵심 전술인 기병 돌격에 맞설 수 있도록 방어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4. 기습 공격
해럴드 왕은 노르만군이 상륙한 직후 기습 공격을 감행할 계획이었습니다. 적이 아직 진영을 정비하기 전에 선제공격을 가해 혼란에 빠뜨리고 상륙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5. 노르만군의 약점 활용
해럴드 왕은 노르만군이 기병에 크게 의존하며 근접전에서 취약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앵글로색슨 보병의 대표적인 방어 전술인 '방패벽(shield wall)' 진형을 활용해 기병 돌격을 막아내고, 앵글로색슨군이 우위에 있던 백병전으로 전투를 유도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6. 보급선 차단
침공군이 식량과 장비의 지속적인 보급 없이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노르만군의 보급선을 교란해 그들이 스스로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결국 후퇴나 협상으로 몰아붙이려 했습니다.
7. 동맹과 지원 확보
해럴드 왕은 웨일스 등 인접 세력의 통치자들과 동맹을 맺어 병력을 보강하고, 노르만군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려 노력했습니다.
계획은 왜 실패했는가?
그러나 해럴드 왕의 치열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그의 계획은 여러 요인으로 좌절되었습니다. 기습이라는 변수, 정복자 윌리엄의 뛰어난 지휘 능력, 그리고 노르만군이 보유한 기병과 궁술의 전술적 우위가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결국 해럴드 왕은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패배했고, 잉글랜드는 노르만 정복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