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아쟁쿠르 전투를 잉글랜드의 헨리 5세와 프랑스의 샤를 6세 간의 대결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실제로 헨리 5세가 직접 맞선 상대는 샤를 6세가 아니었습니다.
샤를 6세는 왜 전장에 없었나?
아쟁쿠르 전투(1415년 10월 25일) 당시 샤를 6세는 이미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 국정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주기적으로 심각한 발작을 겪으며 '미친 왕(le Roi Fol)'이라 불릴 정도였고, 프랑스 왕국은 사실상 섭정들과 귀족 세력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궁정은 아르마냑파와 부르고뉴파의 내분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혼란은 오히려 헨리 5세가 프랑스 침공을 감행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프랑스군을 지휘한 사람은 누구인가?
아쟁쿠르에서 프랑스군을 실제로 지휘한 것은 왕실 군사령관(대원수)인 샤를 달브레(Charles d'Albret)였습니다. 그는 원수 부시코(Jean II Le Maingre, Boucicaut)와 함께 약 2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군을 이끌었으나,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전투의 결과
헨리 5세는 약 6천 명의 병력, 특히 장궁병(longbowmen)의 활약으로 수적으로 크게 우세한 프랑스 기사단을 격파하며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는 백년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훗날 1420년 트루아 조약을 통해 헨리 5세는 샤를 6세의 사후 프랑스 왕위 계승권까지 확보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아쟁쿠르 전투는 헨리 5세와 샤를 6세의 직접적인 대결이 아니라, 정신 질환으로 통치 능력을 상실한 왕 대신 귀족들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잉글랜드군의 충돌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