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들은 악명 높은 파마산 치즈 스캔들을 보나 스포르차의 심술궂음과 과민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증거로 꼽곤 한다. 하지만 이는 적국 첩자를 상대로 벌인 치밀하고도 탁월한 계략이었던 것은 아닐까?
얀 마르수핀(Jan Marsupin)은 외교관이자 합스부르크 정보기관의 요원으로서 수차례의 해외 임무를 수행해 온 베테랑이었다. 그는 이번 임무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해질 거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1543년, 그는 폴란드 왕세자 지그문트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한 엘리자베트 공주를 따라 크라쿠프로 향했다. 공식적으로 그는 공주의 통역사이자 보호자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비스툴라 강변에서 페르디난트 대공의 눈과 귀 역할을 수행하는 합스부르크 스파이였다.

파마산 치즈. 16세기 최대 스캔들 중 하나의 씨앗이 된 바로 그 치즈다.
마르수핀은 이탈리아인이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인들이 넘쳐나는 크라쿠프 궁정에서 특별히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게다가 바벨 성은 유럽에서 가장 분위기 좋고 편안한 곳으로 독특한 평판을 누리고 있었다. 정보가 말 그대로 자갈길 위에 널려 있는 곳이라고들 했다. 아마 모든 권력이 태평성대의 지그문트 구왕 손에 있던 시절에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수핀을 기다린 것은 뜨거운 환영이 아니라 연이은 굴욕뿐이었다.
아들과 합스부르크 가문 여인의 결혼에 공공연히 반대하던 왕비 보나 스포르차는 새 며느리의 생활을 힘들게 만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며느리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지그문트 아우구스투스가 아내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쏟지 않도록 은근히 견제했다. 마르수핀은 점점 더 많은 항의 보고를 올렸다. 처음에는 신중하고 외교적으로, 마침내는 완전히 공개적으로 수십 가지 불만 사항 목록을 읽어 내려갔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여왕은 궁정에서 이 침입자를 최대한 빨리 몰아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제국 특사를 그냥 쫓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허풍과 잡담을 좋아하는 마르수핀의 버릇을 생각하면 기회는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중년의 보나. 얀 마테이코의 드로잉.
그녀의 예감은 적중했다. 단 두 주 만에 크라쿠프에서 유명한 '파마산 치즈 소동'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왕국 평의회 소집
어느 날, 불운한 엘리자베트가 이 정교한 이탈리아 치즈가 당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교적 소박한 그녀의 부엌에는 파마산이 없었고, 시녀들에게 보나의 창고 관리인에게 파마산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게 했다. 관리인은 망설임 없이 치즈 원판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소란이 벌어졌다. 이 일이 보나의 귀에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자신의 부엌에서 나가는 모든 것을 금지시키고, 파마산 스캔들에 연루된 사람들을 하나하나 징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역사학자들은 이 일화를 보나의 심술궂음과 과민함을 보여주는 최고의 증거로 인용하곤 한다. 물론 여왕은 두 가지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흥미로운 일들은 그 후에 시작되었다.
보나는 가장 저명한 원로원 의원들과 주교들로 구성된 왕국 평의회를 소집했다. 선왕이 아니라 군주가 직접 의장을 맡는 특별한 회의체였다. 이 명망 있는 기구는 수치스러운 소문을 퍼뜨리고 궁정 신하들을 선동한 죄로 마르수핀을 심판하게 되었다.
"신사 여러분께서는 이렇게 사소하고 하찮은 일 때문에 제가 여러분을 소집했다고 웃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악은 반드시 그 시작 단계에서 다스려야 하는 법입니다"라고 보나는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웃지 않았다. 원로원 의원들은 한결같이 그녀의 편에 섰다. "당연히 그 치즈 얘기를 퍼뜨린 자를 벌해야 합니다!" 그니에즈노 대주교는 우렁차게 외쳤다.
"온 세상이 이 여왕을 미치고 분노에 사로잡힌 자라 부른다"
공식적으로는 마르수핀이 숨겨준 소문의 익명의 작성자가 문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국 요원 마르수핀 자신이 모든 매질을 감당했고, 그의 궁정 내 입지는 돌이킬 수 없이 파탄에 이르렀다.
"저는 폐하께서 저를 썩은 생선처럼 내치라고 명령하실까 두려웠습니다!" 그는 보고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르수핀은 상황의 심각성을 여전히 과소평가했다. 페르디난트 대공에게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면서도, 동시에 그는 보나를 흔한 바보처럼 도발했다. "이건 소녀의 울음소리일 뿐입니다"라고 그는 한 통의 서신에 적었다. "소녀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입니다"라고 다음 편지에 덧붙였다. 하지만 또한 이렇게도 말했다. "온 세상이 이 여왕을 미치고 분노에 사로잡힌 자라 부릅니다!"

1542년 이후 제작된 초상화 속 합스부르크의 엘리자베트
그는 아마 보나를 경멸하는 마음이 더 큰지, 아니면 두려움이 더 큰지 끝내 결정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서신 중 하나에서 그는 후원자에게 경고했다. 강대한 폴란드의 통치자가 튀르크 제국과 뜻밖의 음모를 꾸몄다고. 그리고 술탄의 배 수십 척, 아니 수백 척이 이미 그녀의 개인적 요청에 따라 나폴리를 향해 항해 중이며, 불태우고 파괴하고 약탈할 것이라고. 물론 완전한 헛소리였다. 그런데도 마르수핀은 그 말을 믿었다.
마지막 수
사실 보나는 훨씬 더 현실적인 문제에 몰두하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스파이의 목을 꺾는 일이었다. 마르수핀이 튀르크 선박에 대한 터무니없는 소문을 적어 내려가는 동안, 그의 발밑에서 모래성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젊은 여왕을 알현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왕실 거처에서는 그에게 온갖 방해가 가해졌다. 그가 합스부르크의 엘리자베트와 마지막으로 대화한 것은 1543년 8월 15일경이었다.
"저는 폐하께서 너무 소극적으로 행동하시고, 모든 것을 너무 살피시느라 그토록 많은 악의적인 소문을 견뎌 오신 것에 대해 간언했습니다. 폐하께서 사자의 심장을 보여주시는 한, 보나 여왕은 폐하를 박해할 엄두도, 나쁜 말 한마디를 할 용기도 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시켜 드렸습니다"라고 그는 훗날 페르디난트에게 보고했다.

브와디스와프 발키에비치가 그린 보나 스포르차. 19세기 중반
이 훌륭한 충고만으로도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인에게는 한동안 충분했을 것이다. 마르수핀이 다시 그녀를 찾아갔을 때, 그가 마주한 것은 니에포워미체 궁전의 굳게 닫힌 문뿐이었다. 위병들은 그의 출입을 거부했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이유로. 근처에는 여관도 없었고 해는 서서히 저물어 갔다.
강대한 합스부르크 왕조의 특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금색 장식이 달린 이불 대신, 그는 마구간의 축축한 타작 마루에 몸을 눕혀 잘 수밖에 없었다. 짚 한 다발이나 밀짚 한 줌조차 받지 못했다. 그는 고열에 시달렸고, 기회가 닿는 대로 폴란드에서 도주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나는 그를 굴욕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를 죽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주교 한 명에게 "마르수핀을 몽둥이로 때리라고 명령한다"고까지 말했다고 전해진다.
출처
야기엘워 가문의 복잡한 역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카밀 야니츠키(Kamil Janicki)의 저서 황금기의 여인들(호라이즌 라벨, 2014)을 참고하라. 이 글은 저자가 집필 과정에서 수집한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