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가르치는 내용과 달리, 어떤 연대기에도 '세디니아 전투'라는 말은 한 글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972년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니, 더 근본적으로—그 전투는 과연 어디에서 벌어진 것일까요?
폴란드 공작 미에슈코(Mieszko)와 독일 변경백 호돈(Hodon)의 군대 사이에 벌어진 유명한 충돌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여기를 클릭해 읽어보세요)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지점은 따로 짚고 넘어갈 가치가 있습니다. 그 전투는 실제로 어디에서 벌어졌을까요? 그리고 왜 그 답이 결코 자명하지 않은 것일까요?
부정확한 번역
전투 당사자 중 한 명의 아들이기도 했던 독일 주교 티트마르(Thietmar) 연대기의 통용 번역본에 따르면, 전투는 '세디니아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티트마르는 마을이 아니라 단지 '장소(locum)'에 대해 언급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그는 '세디니아'라는 이름이 아니라 라틴어 명칭 Cidini를 사용했습니다.
오늘날의 세디니아 인근, 소위 '치치보라 산(Czcibora Mountain)'에 있는 모자이크 조각
그가 요새를 의미했는지, 촌락을 의미했는지, 혹은 숲이나 도하 지점을 의미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전투는 폴란드-독일 국경에 위치한 세디니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동일시의 배후에는 주로… 정치적 논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안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이 충돌의 위치를 특정하려는 시도는 19세기 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도 오늘날의 세디니아가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유일한 후보였던 것은커녕 가장 유력한 후보조차 아니었습니다.
1839년, 독일 중세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바르톨트(Friedrich Wilhelm Barthold)는 972년의 전투를 그곳에 위치시키고 싶지만, "이 마을이 북쪽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 일대에 치텐(Zithen)이나 지텐(Sithen) 같은 이름을 가진 오래된 슬라브 마을들이 없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L. 피에시츠키(L. Piesicki)가 그린 '세디니아 전투'
실제로 전투가 오늘날의 세디니아에서 벌어졌다면, 호돈은 '멀리 북쪽으로 위험한 원정'을 감행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 변경백은 루사티아(Lusatia)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세디니아에 도달하려면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변경백의 영토를 통과하면서, 미에슈코의 영토 경계를 200km가 넘는 커다란 호를 그리며 우회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호돈이 자신의 영지에서 피아스트 왕조의 땅으로 곧장 이어지는 더 짧은 경로를 택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커 보입니다.
바르톨트는 또한 Cidini라는 이름이 너무나 특징적이지 못해서 천 년이 지난 지금 수십 개의 마을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옳게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같은 수만큼의 마을이 한때 실제로 존재했다가, 역사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기묘한 침묵
다른 연구자들은 전투가 오늘날의 폴란드-독일 국경에서 벌어졌다면 독일 병사들의 눈에 반드시 들어왔을 풍경의 핵심 요소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한 역사학자가 강조했듯이, "티트마르가 별다른 의미를 알려주지 않는 어떤 마을의 이름은 적어 놓고서는, 이곳에서 수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지는 오데르 강에 대한 언급은 빠뜨렸다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이름
중요한 점은, 오늘날의 세디니아 자체가 19세기(그리고 그 이전의 여러 세기)에는 애초에 세디니아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마을은 당시 독일 영토에 속해 있었으며 '체덴(Zehden)'이라 불렸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의도적인 계획과 선전 목적에 따라 새로 접수한 이 국경 도시는 같은 적과의 과거 대결을 상기시키도록 개명되었습니다. 물론 즉각적인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체드넴(Cednem)'이 되었다가, 이어 '체지나(Cedzyna)'가 되었고, 잠깐 사이에는 심지어 '슈체르비에츠(Szczerbiec)'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종 명칭은 1946년에야 확정되었습니다.
세디니아 전투에는 수많은 신화가 덧씌워져 있습니다. 위 그림은 책 『폴란드의 승리들』에 실린 삽화입니다.
일반인들에게 도시의 이름은 유명한 전투와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완벽한 증거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학문적 지식에 비추어 보면, 이는 완전히 엉터리인 연결입니다. 이미 1928년 알렉산데르 브륵네르(Aleksander Brückner)는 '세디니아'라는 이름을, 티트마르가 라틴어로 그리 능숙하지 않게 적으려 했던 원래 명칭의 잘못된 읽기로 규정하며 기각한 바 있습니다.
포메라니아(Pomerania) 역사의 권위자이자 현대의 연구자인 얀 마리아 피스코르스키(Jan Maria Piskorski) 교수 또한 분명하게 말합니다. 역사 속 마을 Cidini가 어디에 위치했든, 그것은 어떤 '세디니아'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곳은 "시지나(Sidzina) 혹은 시에디나(Siedina) 혹은 슈치트노(Szczytno) 혹은 시트노(Sitno)"여야만 합니다. Cidini라는 표기를 이렇게 읽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 알아보기:
- Filipowiak W., Cedynia in the times of Mieszko I, Poznań Publishing House, Poznań 1966.
- Janicki K., Iron ladies. The Women Who Built Poland, Znak Horyzont, Krakow 2015.
- Labuda G., Studies on the beginnings of the Polish state, vol. I, Scientific Publishers of the University of Adama Mickiewicza, Poznań 1987.
- Migdalski P., The meaning and location of the Battle of Cidini in the light of historiography [in:] Civitas Schinesghe. Mieszko I and the beginnings of the Polish state, edited by Jan Maria Piskorski, Poznań Society of Friends of Sciences, Poznań – Gniezno 2004.
- Piskorski J.M., Tribal Pomerania. History - Archeology - Linguistics, Sorus, Poznań – Szczecin 2002.
- Rochala P., Cedynia 972, Bellona, Warsaw 2002.
- Strzelczyk J., Mieszko the First, Abos Publishing House, Poznań 1992.
- Strzelczyk J., Otto the Great, Poznań Publishing House, Poznań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