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리스트(Loyalists), 흔히 토리(Tories)라고 불리던 충성파는 보스턴 대학살 사건에 대해 대체로 우려와 비판적인 입장을 표했습니다. 그들은 사건에 연루된 영국군 병사들의 행위가 정당방위였다고 믿었으며, 오히려 군중의 행동이 도발적이고 위협적이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당방위론과 보스턴에 대한 책임론
충성파 중 일부는 보스턴의 급진적인 주민들이 폭력을 선동했다며 책임을 마을 자체에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들 눈에는 격분한 군중이 병사들을 포위하고 위협하는 상황이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식민지의 과도한 반응에 대한 비판
많은 충성파는 보스턴 대학살을 식민지 주민과 영국 당국 사이에 누적된 갈등에서 비롯된 불행한 사건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식민지의 대응이 지나치게 과격했으며, 이러한 격앙된 분위기가 지역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방해한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들에게 이 사건은 이미 긴장 상태에 있던 식민지와 영국 정부 간의 관계를 한층 더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충성파는 폭력이 아닌 대화와 법적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재판 이후 심화된 여론의 양극화
보스턴 대학살의 여파는 사건 자체보다 더 큰 파장을 낳았습니다. 특히 존 애덤스가 변호를 맡았던 영국군 병사들에 대한 재판과 대부분 무죄라는 판결은 식민지 내 여론을 크게 양극화시켰습니다.
독립을 원하는 애국파(Patriots)는 이 판결에 분노했지만, 충성파는 법치주의가 작동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처럼 보스턴 대학살과 그 후속 재판은 애국파와 충성파 사이의 균열을 더욱 깊게 만들며, 결국 미국 독립 혁명으로 치닫는 갈등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