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서기 70년, 예루살렘의 몰락: 로마가 유대인에게 남긴 뿌리 깊은 상흔

서기 70년, 로마 제국은 유대인의 대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대교의 가장 신성한 성소인 제2성전(第二聖殿)을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되며, 유대 지역의 정복과 함께 수천 년에 걸친 유대 민족의 디아스포라(大흩산, Diaspora)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군을 지휘한 것은 후일 황제가 되는 티투스(Titus)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명을 받아 제1차 유대-로마 전쟁(기원후 66~73년)의 마무리를 담당했고, 수개월간의 처절한 공방전 끝에 예루살렘을 무너뜨렸습니다.

로마가 유대인에게 부과한 결과

1. 제2성전의 파괴

유대인의 종교적 삶의 중심이자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던 성전이 불타 없어졌습니다. 성전이 있던 자리에는 오직 서쪽 벽, 즉 오늘날 '통곡의 벽' 일부만이 남았으며, 이는 유대 종교·문화 생활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2. 포위와 기근

로마군의 철저한 포위 작전으로 도시 안은 극심한 식량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굶주림과 질병이 만연했고, 수많은 예루살렘 주민이 공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심지어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끔찍한 행동에까지 내몰렸다고 기록했습니다.

3. 학살과 노예화

도시가 함락되자 수많은 유대인이 잔혹하게 살해되었고, 살아남은 다수는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추정에 따르면 공방전 전후로 수십만 명의 유대인이 사망했으며, 생존자들은 로마 전역의 노예 시장에 팔려갔습니다. 승전 기념물인 티투스 개선문에는 성전의 보물들이 실려 나오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4. 유대 도시와 마을의 파괴

로마군은 예루살렘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유데아( Judea) 전역의 유대 도시, 마을, 요새가 체계적으로 불태워지고 평탄화되었으며, 마사다 요새의 최후 항전까지 이어지는 저항의 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5. 디아스포라 — 민족의 흩어짐

생존자들의 상당수가 고향을 떠나 로마 제국 각지와 그 너머로 흩어졌습니다. 이렇게 강제된 대이동은 유대인 공동체가 바빌로니아, 북아프리카, 유럽 등지에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고, 유대 민족의 역사에 결정적인 방향을 부여했습니다.

6. 토지 상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땅 대부분을 빼앗겼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유대인 공동체가 억눌리거나 해체되었고, 그들의 토지는 로마 병사들에게 분배되거나 황실 재산으로 편입되었습니다.

7. 차별적 통치와 반유대 정책

로마는 유대인을 겨냥한 차별적 법령과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예루살렘 자리에는 로마 식민 도시 '아일리아 카피톨리나'가 세워졌고, 유대인의 성지 출입과 종교 의식, 사회적 권리, 경제 활동에 각종 제약이 가해졌습니다.

8. 경전과 문화유산의 파괴

로마의 정복 과정에서 수많은 유대 경전과 종교 물품, 문화유산이 파괴되거나 약탈당했습니다. 성전의 금등롱과 성전 헌금함 같은 보물들은 로마로 실려가 개선식의 전리품으로 전시되었습니다.

9. 유대인 특별세 — 피스쿠스 유다이쿠스

파괴된 성전에 바치던 성전 세는 그 형태를 바꾸어 '피스쿠스 유다이쿠스(Fiscus Judaicus)'라는 이름으로 로마 국고에 납부하도록 강제되었습니다. 모든 유대인은 매년 이 추가 세금을 부담해야 했으며, 이는 공동체에 오랫동안 경제적·정신적 굴레로 남았습니다.

역사에 남긴 의미

로마의 유데아 정복과 그 여파는 유대 민족의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삶을 수 세기에 걸쳐 깊이 변화시켰습니다. 성전 중심의 종교는 랍비 중심의 유대교로 재편되었고, 흩어진 공동체들은 각지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지켜냈습니다. 서기 70년의 참극은 단순한 군사적 패배를 넘어, 유대인의 기억과 정체성 속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상징적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