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천 년의 시간을 품은 예술과 역사의 도시, 프랑스 블루아

천 년의 시간을 품은 예술과 역사의 도시, 프랑스 블루아
블루아(Blois). 이 이름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그려지는 것은 단연 웅장한 왕립 성입니다. 샤토 드 블루아는 중세부터 19세기까지 프랑스 건축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로 꼽힙니다. 그러나 블루아는 단지 '성의 도시'만은 아닙니다. 천 년이 넘는 프랑스 역사를 함께해 온 오래된 도시로, 곳곳에 남은 풍부한 건축 유산 역시 프랑스 건축의 발전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블루아는 '예술과 역사의 도시(Ville d'art et d'histoire)' 인증을 받고 있으며, 이를 살린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블루아의 역사

1790년부터 루아르에티셰르(Loir-et-Cher) 주의 주도가 된 블루아의 역사는 도시의 지리와 지형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루아르 강변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했고, 이후 강과 보스(Beauce) 고원의 절벽 사이, 아루(Arrou) 계곡 입구에 갈리아·로마 시대의 작은 마을이 자리 잡았습니다. 원호를 그리듯 뻗어 나간 도시의 형태 덕분에 블루아는 '루아르 강변의 원형극장'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훗날 성이 세워진 바위 언덕 아래 펼쳐진 이 일대가 도시의 요람으로, 이후 구도시(하부 도시)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메로빙거 왕조 시대부터 블루아는 블루아 백작들의 영향 아래 점차 위상을 쌓아갔으며, 그 명성은 백작들의 정치적 권력에 따라 등락을 거듭했습니다. 항구이자 상업 도시였던 블루아가 성장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오를레앙–투르 축과 샤르트르–부르주 축이 교차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1498년 국왕 루이 12세는 블루아를 왕실 도시로 삼았고, 도시는 새로운 발전기를 맞이합니다. 특히 성과 당시 무려 10헥타르에 달했던 정원이 정비되었을 뿐 아니라, 왕실을 따라온 궁정 인사들을 위해 수많은 저택이 들어섰습니다. 16세기 초 성 주변은 대저택들로 둘러싸였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사라졌습니다. 1540년부터는 프랑수아 1세가 일 드 프랑스 지역을 더 선호하면서 블루아는 상대적인 침체기를 겪게 되고, 도시는 강력한 이웃인 오를레앙과 투르의 영향권에 놓이게 됩니다.

천 년의 시간을 품은 예술과 역사의 도시, 프랑스 블루아
도시의 부흥은 17세기 말 루이 14세의 통치기까지 미뤄집니다. 루이 14세는 블루아에 주교좌를 설치했고, 생루이(Saint-Louis) 대성당을 중심으로 루아르 강을 내려다보는 완전히 새로운 신시가지가 발달했습니다. 이 시기 대대적인 토목 공사와 도시 미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루이 15세 대에는 강변 방면으로 도시가 변모하여 강안 정비가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새 다리가 건설되었습니다. 11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옛 다리가 1716년 붕괴하면서, 그로부터 약 80미터 상류에 새 교량이 세워진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과 특히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지만, 오늘날 블루아는 여전히 풍부하고 매력적인 유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건축의 파노라마

프랑스 건축과 그 변천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단연 샤토 드 블루아입니다. 불꽃 장식 고딕(Flamboyant Gothic)에서 르네상스, 고전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이 한 건물 안에 공존합니다. 하지만 도시 자체도 공공·민간·종교 건축물이 풍성해 결코 뒤처지지 않습니다. 우선 떠오르는 것이 16세기, 혹은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목골조(half-timbered) 주택들입니다. 피에르 드 블루아 거리 끝자락에 있는 '곡예사의 집(Maison des Acrobates)'은 루이 11세 재위기에 지어진 웅장한 건물로 대표적입니다. 르네상스 시기의 개인 저택들도 빼놓을 수 없는데, 퓌 샤텔 거리 7번지의 사르디니 저택(Hôtel de Sardini)이 좋은 예입니다. 계단 출입문 위에는 루이 12세의 상징인 고슴도치 조각이 남아 있는데, 이는 해당 시기 작품이 온전하게 보존된 몇 안 되는 사례입니다(성의 루이 12세관에 있는 것들은 복원된 작품입니다).

종교 건축물 중에서는 구도시에 위치한 생니콜라(Saint-Nicolas) 교회를 먼저 꼽을 수 있습니다. 옛 생로메(Saint-Lomer) 수도원이었던 이 교회는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어우러져 있으며, 내부는 샤르트르 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부 도시의 생루이 대성당은 양식 면에서 무척 독특합니다. 6세기의 생피에르 예배당에서 시작된 이 건물은 9세기 말 생솔렌(Saint-Solenne) 성인의 유물을 모시게 되면서 확장되었고, 그 흔적으로 카롱링거 양식의 지하 납골당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후 프랑수아 1세 때 르네상스 양식의 증축이 이루어졌고, 17세기 말 허리케인으로 피해를 입은 뒤에는 고전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습니다. 건물의 절충주의적 매력은 2000년 얀 디베츠(Jan Dibbets)와 장 모레(Jean Moret)가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완성됩니다.

천 년의 시간을 품은 예술과 역사의 도시, 프랑스 블루아
대성당 뒤편에는 시청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원래 블루아 주교들의 관저였습니다. 18세기 초 자크 5세 가브리엘(Jacques V Gabriel)이 설계한 건물로, 그는 같은 시기 도시의 다리 설계도 맡은 건축가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옛 주교 관저의 정원도 놓치지 마세요. 테라스 위에 조성되어 도시와 루아르 계곡의 환상적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으며, 현재는 눈과 코를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로즈가든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종교 건축물, 19세기 도시 계획의 흔적, 풀랭(Poulain) 초콜릿 공장으로 대표되는 산업유산까지 더해지면서 블루아는 중세부터 오늘날까지 프랑스 건축의 거의 모든 유형을 한 도시 안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곳입니다.

블루아의 유산을 만나는 방법

블루아시는 유산을 알리고 활용하기 위해, 특히 '예술과 역사의 도시'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시를 둘러보는 방법도 선택의 폭이 넓습니다. 늘 사랑받는 마차 투어는 물론, 청동 못 표식을 따라 걷는 테마별 도보 코스를 통해 도시와 그 역사, 삶의 지혜(savoir-vivre)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직접 들려드리는 이야기(Let yourself be told…)'라는 이름의 트레일을 따라 루아르 강을 하이킹하거나, 옛 풀랭 초콜릿 공장을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전문 가이드와 함께하는 투어도 마련되어 있으며, 아이들을 위해서는 도시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유산 학습 코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의 여름 프로그램, 특히 야간 조명과 음향이 어우러진 '소리와 빛의 밤' 공연만큼이나 도시의 여러 박물관도 잊지 마세요.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매력적인 곳은 단연 '마법의 집(Maison de la Magie)'입니다. 성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19세기 저택을 꾸민 이곳에서는 창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신비한 용 조각상들이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블루아의 아름다운 유산만큼이나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입니다.

블루아 예술·역사 도시 건축 및 유산 코디네이터 에마뉘엘 플류메(Emmanuelle Plumet)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여행 정보

• 블루아시 공식 정보
• 샤토 드 블루아
• 마법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