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로마 최대의 수로교, 퐁 뒤 가르(Pont du Gard)의 역사

로마 최대의 수로교, 퐁 뒤 가르(Pont du Gard)의 역사

프랑스 님(Nîmes) 근처, 가르동(Gardon) 강 위에 우뚝 솟은 퐁 뒤 가르(Pont du Gard)는 로마 수로교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프랑스에 남아 있는 로마 건축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꼽힙니다. 1840년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érimée)에 의해 '주요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13년부터 역사 기념물로 등록되었으며, 198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 시대에는 이름뿐인 장식품이 아니라 순전히 실용적인 목적으로 세워진 구조물이었습니다. 석회암으로 지어진 이 다리는 투스카나식(Tuscan order) 아치가 3층으로 겹쳐진 구조로, 강풍과 홍수, 전쟁, 산업화의 물결을 모두 견뎌내며 오늘날까지 그 자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퐁 뒤 가르의 건축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 수로교인 퐁 뒤 가르는 님과 아비뇽(Avignon)에서 각각 21km 거리에 있는 베르퐁뒤가르(Vers-Pont-du-Gard) 지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로마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님 주민들도 물을 사랑했습니다. 일상생활의 편의는 물론 목욕탕과 분수대를 위해서도 물이 반드시 필요했지요. 그래서 서기 40년대부터 60년대 사이, 클라우디우스와 네로 황제 재위 기간 동안 약 50km 떨어진 위즈(Uzès)의 샘물을 도시로 끌어오기 위한 수로가 건설되었습니다. 퐁 뒤 가르는 이 거대한 수로의 일부분일 뿐이며, 전체 경로의 약 90%는 지하에 매설되어 있었습니다.

이 웅장한 다리는 길이 275m에 걸쳐 가르동 강을 가로지르며, 세 개 층의 아치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높이 약 20m의 1층에는 6개의 아치가, 같은 높이의 2층에는 11개의 아치가, 그리고 마지막 3층에는 높이 약 8m에 훨씬 작은 47개의 아치가 놓여 있습니다. 물은 3층의 폭 1.2m짜리 수로를 따라 흘렀으며, 평균 경사는 1km당 겨우 25cm에 불과했습니다. 하루 평균 3만 5,000㎥의 물이 흘렀고, 물이 위즈에서 님까지 도달하는 데는 약 26시간이 걸렸습니다.

석재는 약 500m 떨어진 채석장에서 채굴한 것으로, 작은 조개 화석이 박힌 거친 입자의 옅은 노란색 석회암이었습니다(이 돌은 오늘날에도 주택 장식용으로 쓰입니다). 일부 돌은 무게가 6톤에 달했는데, 소가 끄는 수레에 실려 운반된 뒤 나무 롤러 위에서 미끄러뜨려 이동시켰습니다. 총 무게 약 5만 400톤에 이르는 이 대공사에는 약 1,000명의 인부가 15년간 동원되었고, 완전히 가동되기까지는 2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퐁 뒤 가르는 진정한 건축의 걸작입니다. 바위 위에 세워진 1층 교각은 폭이 2.6m에 달하며, 가르동 강의 홍수를 견딜 수 있도록 물살을 분산시키는 첨두(尖頭)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모든 석재는 모르타르 없이 조립되었는데, 돌들을 서로 깎아 맞추며 완벽한 위치를 잡아갔습니다.

수로의 변천

로마 최대의 수로교, 퐁 뒤 가르(Pont du Gard)의 역사2~3세기 동안 이 수로는 최상의 상태로 기능했습니다. 사람들은 1층의 폭 3.5m 보행로나 2층의 폭 1m 통로를 통해 다리를 건너 다녔습니다. 그러나 4세기부터는 관리가 중단되어 농경지에 물을 대는 용도로만 쓰이다가, 6세기에 완전히 버려졌습니다. 9세기에는 아예 기능을 잃었고, 사람들은 집이나 다른 건물을 짓기 위해 다리의 돌을 떼어 가기도 했습니다.

중세에는 보캴르(Beaucaire) 대시장으로 향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지만, 통행료를 내야 하는 다리였습니다. 위즈 영주는 현재 가치로 약 450유로에 해당하는 금화를 걷었으며, 16세기에 이르자 통행료는 두 배 이상 인상되었습니다.

그러나 건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리는 점점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1699년 지방 총독이 보수 공사를 요청했고, 1745년에는 수로교의 동쪽 면에 기대듯 가르동 강 위에 새로운 다리가 건설되었습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소중한 수로교를 손상시키지 않고도 멀리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나폴레옹 3세의 명으로 1853년부터 1857년 사이에 본격적인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고,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졌습니다.

로마인이 세운 이 수로교는
라 폰텐 데브르(La Fontaine d'Èvre)의 물을 님으로 나르기 위해 지어졌으며,
1702년 랑그독 주(州)의회가 보수하였고,
1855년 황제 나폴레옹 3세의 명과
국무장관 샤를 퀘스텔(Ch. Questel),
건축가 J. 라이네(J. Laisné)의 노력으로 보강·복원되었다.

수많은 문인들이 이 영원히 남을 아름다운 대작을 찬양했습니다. 알렉산드르 뒤마(Alexandre Dumas)는 "퐁 뒤 가르라 불리는 이 장엄한 화강암 서사시만큼 아름답고, 웅대하고, 베르길리우스적인 것을 본 적이 없다"라고 썼습니다. 스탕달(Stendhal)의 찬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이 기념물은 단순한 수로교였지만, 가장 깊은 고독 한복판에서 웅장하게 솟아 있다. 마음은 길고 깊은 경외감에 사로잡힌다. 여기에는 사치와 장식의 흔적이 전혀 없다. 로마인들은 이렇게 놀라운 것들을 감탄을 자아내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단지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퐁 뒤 가르

퐁 뒤 가르 부지는 약 2만 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해 온 곳입니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되자 연구자들은 발굴 작업에 착수했고, 강가 근처에서 화석, 입상선돌(처녀석), 고대 주거지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발라우지에르(Balauzière) 동굴, 살페트리에르(Salpêtrière) 동굴, 사르타네트(Sartanette) 동굴 등 세 개의 동굴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로마 최대의 수로교, 퐁 뒤 가르(Pont du Gard)의 역사방문객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퐁 뒤 가르의 1층을 걸으며 다리를 직접 체험합니다. 이에 따라 외부 정비 사업도 추진되었습니다. 1996년에 시작된 이 사업은 4년에 걸쳐 '가리그(garrigue)의 기억'이라는 테마의 탐방 코스와 함께 지식과 탐구를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현재 그곳에는 2,500㎡ 규모의 로마 문명 박물관이 들어서 있으며, 퐁 뒤 가르의 역사를 담은 영상도 상영되고 있습니다.

매년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는 연간 100만 명을 넘는 방문객들이 '퐁 뒤 가르 플라주(Pont du Gard Plage)'에서 물가에 설치된 뗏목과 함께 가르동 강의 시원한 물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더 읽을거리

- 『님 수로와 퐁 뒤 가르: 고고학, 지질 시스템, 역사』(The Aqueduct of Nîmes and the Ponts du Gard: Archaeology, Geosystem, History), 기욤 파브르(Guilhem Fabre) 지음, CNRS, 2000

- 『퐁 뒤 가르와 로마 수로교』(The Pont du Gard and the Roman Aqueducts), 프레데릭 카르티에-랑주(Frédéric Cartier-Lange) 지음, Alcide Youth,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