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동쪽으로 약 190km 떨어진 벨리키노브고로드는 중세 시대 노브고로드 공국의 수도이자 이후 노브고로드 공화국의 중심지였으며, 오늘날 러시아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도시다. 1956년 7월 13일부터 14일 사이, 고고학자들은 노브고로드에서 글과 그림이 새겨진 자작나무 껍질 17점이라는 독특한 보물을 발굴했다.
자작나무 껍질에 남겨진 중세의 흔적
1951년 7월 첫 발견 이후 수많은 유사한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현재까지 그 수는 수천 점에 이른다. 이 유물들은 '베레스타(beresty)'라고 불리는데, 정확히 '자작나무'를 의미하며 고대 러시아어의 가장 초기 증거 일부를 담고 있다.
노브고로드 지역 전체가 자작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다른 필기 재료가 귀했던 중세에는 자작나무 껍질이 글쓰기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후 진흙 토양이 습기로부터 껍질을 보호해 주면서 오늘날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어린이의 손길이 묻어난 그림들
그런데 1956년에 발견된 17점은 특별했다. 그중 12점에는 삽화가 있었고 나머지 5점에는 글만 적혀 있었다. 그림은 분명히 아이의 작품이었다. 하나는 창을 들고 말을 탄 기사를, 또 하나는 두꺼운 목, 뾰족한 귀, 곱슬 꼬리를 가진 환상적인 동물('나는 야생 짐승이다'라는 문구와 함께)을 그린 것이다. 다른 그림들은 작가 자신이나 친구들의 초상으로 보이며, 나무 주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심지어 부모님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도 있다.
글 내용은 모두 반복되는 음절과 알파벳 문자, 그리고 주로 성경 시편에서 가져온 구절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이름은 두 점에 등장하는데, 한 점에는 '다닐로에게 온핌이 인사를 전합니다', 다른 점에는 단순히 '온(f)'이라고 적혀 있다.

6~7세 소년 온핌의 학교 생활
연구진은 이 유물들이 13세기 노브고로드에 살았던 온핌(Onfim)이라는 6~7세 소년의 그림과 학교 숙제라고 결론지었다.
온핌은 알파벳 쓰기를 연습하고 선생님이 받아쓰기를 시킨 문장을 반복하며, 동시에 자신이 보거나 상상한 것들을 주제로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흥미롭게도 온핌의 그림 속 인물들의 손가락 개수는 3개에서 8개 사이로 들쭉날쭉한데, 이는 그가 아직 수학에 어려움을 겪었거나 세는 법을 배우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단서일 수 있다. 어쨌든 이것들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동 그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글 읽고 쓰기를 배우던 연습장
온핌의 자작나무 껍질 유물들은 1234년에서 1268년 사이로 연대가 측정되었으며, 한 점을 제외한 나머지는 함께 발견되었다. 이는 그가 이 유물들을 같은 시기에 잃어버렸거나 버렸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것들은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한 연습 과제였다. 한 점에는 편지를 시작할 때 쓰는 전통적인 서식을 적었고, 다른 점에는 서명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도문인 '주여, 당신의 종 온핌을 도우소서'라는 문구가 담겨 있다.

중세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기록
온핌의 글뿐만 아니라 노브고로드에서 발견된 다른 유물들도 중세 시대 이 지역 주민들의 문해력 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가장 큰 특징은 이것들이 종교적·정치적 기록이 아니라 개인적인 메시지, 차용증, 연애편지, 장보기 목록 등 일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온핌의 첫 번째 자작나무 껍질이 발견된 장소에는 2019년 8월 23일, 조각가 세르게이 가예프가 제작한 청동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 기념비는 자작나무 껍질에 글을 쓰던 소년 온핌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