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고고학자들은 미케네 문명이 지중해 전역에서 출토될 만큼 방대한 양의 도자기를 어떻게 생산할 수 있었는지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 비결은 갈탄을 체계적으로 연료로 사용한 데 있었습니다. 기존 통념보다 무려 1,000년이나 앞서 그리스에서 갈탄이 채굴되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결과입니다.
미케네 예술: 그리스 티린스, 미케네 성채로 이어지는 서쪽 계단, 기원전 1200년경
근대 산업혁명의 주역이 되기 훨씬 전, 석탄 그중에서도 갈탄은 청동기 시대 그리스에서 미케네 문명의 발전에 일조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된 이번 연구는 유럽에서 갈탄이 채굴·사용된 가장 오래된 증거를 제시합니다.
청동기 시대 미케네인들의 갈탄 채굴
기원전 1600년부터 1100년까지 남부 그리스와 크레타에서 번성한 미케네 문명은 궁정 중심의 행정 체제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그들의 권력은 영토 정복 능력뿐 아니라 경제적 패권을 뒷받침하는 숙련된 공예 기술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아가멤논의 황금 가면' 같은 장례 걸작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미케네와 그에 연결된 궁전 단지들은 고품질 도자기와 청동기 대량 생산의 산실이기도 했습니다. 독일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LMU)의 고고학자 필립 스톡함머(Philipp Stockhammer)가 이끄는 국제 연구진에 따르면, 이런 대규모 생산은 3,000년 이상 전 여러 작업장의 소성로와 제련로에 갈탄을 체계적으로 공급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럽에서 갈탄 채굴과 사용의 가장 오래된 증거입니다.
치석, 고고학의 보물창고
이번 발견은 연구진에게도 뜻밖의 결과였습니다. 원래 이 연구는 기원전 2000년대 동부 지중해의 조리 습관과 연료 공급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필립 스톡함머 교수는 보도자료에서 "치석에는 각 개인의 식사에서 나온 미세 잔류물, 지방, 단백질뿐 아니라 흡입을 통해 입으로 들어간 모든 그을음과 잔류 가스까지 붙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화석화되는 치석은 음식, 질병, 나아가 당시 사람들이 호흡한 공기의 구성 성분까지 복원할 수 있는 고고학자들의 보물창고인 셈입니다.
뜻밖의 연료
그을음의 화학 성분 분석은 두 번째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예상대로 연구진은 먼저 침엽수 연소의 화학적 특징을 확인했습니다. 검은소나무(Pinus nigra), 파인넛(Pinus pinea), 케팔로니아 전나무(Abies cephalonica) 등 이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널리 분포하는 수종들이었습니다. 참나무와 올리브 같은 활엽수, 그리고 오늘날에도 덥고 건조해 나무가 부족한 지역에서 쓰이는 마른 거름(가축 분변)의 흔적도 적게나마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특정 두 지역, 즉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미케네 궁전 도시 티린스와 크레타의 항구 도시 카니아 출신 인물 중 절반에게서 한층 놀라운 물질이 검출됐습니다. 바로 갈탄입니다. 다만 그 신호는 일상 가정에서 요리, 난방, 조명용으로 나무나 거름을 사용할 때와는 구별되는 특수한 연료 사용 방식을 가리켰습니다.
장인의 가마에 불을 지핀 갈탄
연구진은 갈탄이 도자기 제작과 금속 제련을 위한 소성로와 제련로에서 태워졌을 것이라 확신할 만한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당시 에게해의 주요 항구·궁전 중심지였던 티린스와 카니아 두 유적에서 이런 시설이 실제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갈탄 흔적이 묻어난 이들의 정확한 직업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대다수가 격렬한 육체노동, 류머티즘, 만성 폐렴의 징후를 보였습니다. 필립 스톡함머 교수는 "그들은 아마 장인, 즉 갈탄 화롯가에서 일했던 남녀 노동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합니다.
유럽 고대 갈탄 사용의 가장 오래된 증거
지금까지 석탄은 고전기 그리스부터 유럽에서 사용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학자 테오프라스투스(기원전 371~288년)가 저술 돌에 관하여(On the Stones)에서 석탄을 처음 문자로 언급하며 여러 종류의 석탄과 용도를 설명했고, 특히 갈탄이 야금에 유용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갈탄은 기원전 1600년경 중국에서도 이미 사용되었으며, 티린스 주민들에게서 검출된 흔적은 그리스에서 늦어도 기원전 13세기, 즉 미케네 궁전의 전성기에 채굴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갈탄 흔적을 지닌 카니아 주민들은 이보다 앞선 기원전 14~13세기 인물들로, 당시 이 항구는 기원전 15세기 본토 군대의 크레타 정복 이후 미케네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유럽에서 갈탄 사용의 첫 번째 증거를 담고 있습니다.
불을 다루는 기술
미케네 문명이 갈탄에 의존한 데에는 나무 자원 고갈이라는 현실적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미케네 성채 주변 지역은 인구 밀도가 높아 삼림이 크게 황폐화된 상태였습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갈탄은 단순한 대체재가 아니라 미케네 권력 그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였습니다. "고열을 필요로 하는 공예 생산에는 충분한 연료 확보가 필수적이었고, 갈탄은 더 높은 에너지 밀도와 용이한 온도 조절 덕분에 특히 유용했다"는 것이 연구의 설명입니다. 이런 연료는 불을 정교하게 다루는 기술을 전제로 하며, 더 정교한 소성법의 발달과 금속 주조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뮤렉스 문양으로 장식된 테라코타 받침 잔(킬릭스), 기원전 1400~1300년경. 개량된 소성 기법 덕분에 이런 긴 손잡이 잔이 제작될 수 있었고, 이후 미케네 세계 대부분에서 음용 잔의 표준 형태가 되었습니다.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CC0 1.0)
미케네의 권력을 세운 대량 생산
미케네 도자기는 스페인부터 시리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출토되었습니다. 갈탄의 조기 활용은 미케네인들이 도자기와 청동기(그릇, 항아리, 검 등)를 사실상 산업적 규모로 대량 생산해 주로 수출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연구진은 매년 수만 점의 고품질 작품이 작업장에서 생산되었으며, 나무 자원이 고갈된 상황에서 이런 생산은 갈탄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중요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는 화학 성분 분석입니다. 티린스에서 사용된 연료는 서쪽으로 150km 조금 넘는 거리에 있는 올림피아 근처 채굴지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막대한 공급 노력은 미케네 문명이 얼마나 철저한 조직력에 기반했는지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