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피터 폰 잔(Peter von Zahn), 독일 공영방송의 초석을 다진 '첫 시간의 사나이'

모든 것이 시작되던 바로 그 자리에 그가 있었습니다. 피터 폰 잔(Peter von Zahn)은 독일 공영방송의 틀을 잡은 언론인 중 한 사람입니다. 독특한 화법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으며, 그는 2001년 함부르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글: Janine Kuehl

1945년 여름, 독일은 항복 선언 이후 폐허 속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국면에 놓였습니다. 방송 역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었습니다. 영국이 북독일의 통치권을 장악한 지 두 달이 지난 1945년 7월 15일, 폰 잔은 함부르크 라디오에서 기자로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탄탄한 교양과 뛰어난 웅변, 개성적인 화법을 갖춘 그는 곧 함부르크 라디오의 정직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방송국은 1945년 9월 30일부터 NWDR(북서독일방송, Nordwestdeutscher Rundfunk)로 이어졌고, 1948년 1월 1일부터는 연합군 군정의 방송국으로서 독립 방송사로 전환되었습니다. 1956년 NWDR이 NDR과 WDR로 분리되면서, 폰 잔은 북독일 방송의 연속성과 품질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인문주의 교양을 갖춘 레싱의 후예

1945년 7월, 피터 폰 잔은 연합군 군정 산하에서 영국군에 고용되었습니다. 괴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의 후손인 그는, 영국이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실천할 것으로 신뢰한 인물이었습니다. 1913년 1월 29일 켐니츠에서 태어난 폰 잔은 어린 시절을 처음에는 드레스덴에서 보냈고, 이후 가족과 함께 프라이부르크로 이주했습니다.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빈, 예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에서 법학, 역사학, 신문학을 공부했으며, 1939년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 종군기자이자 통역관으로 복무했습니다.

청취자와 함께 생각하도록 이끈 방송인

“Talks & Features”는 전쟁이 끝난 뒤 폰 잔이 함부르크에서 이끌었던 부서의 이름입니다. 그는 나치 정권의 라디오 선전과 정반대에 선 존재였습니다. 청취자에게 거의 대화하듯 다가가며 복잡한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하고, 비판과 논평을 늘 재미있게 풀어냈습니다. 동시에 청취자가 스스로 의견을 형성하도록 독려했습니다. 그는 라디오 매체가 무비판적으로 범람하는 위험 또한 인식해, 청취자가 '과열'되지 않도록 방송 중단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악셀 에게브레히트(Axel Eggebrecht) 같은 동료들과 함께 폰 잔은 영국 모델을 바탕으로 서독의 라디오 방송을 설계했습니다. 영국 점령군은 방송국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독일 언론인에게 상당한 자유를 허용했고 종종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미국 특파원, 외신보도의 선구자

1951년부터 1960년까지 피터 폰 잔은 미국 주재 외국 특파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948년, 독특한 화법으로 주목받던 그는 뒤셀도르프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겼고, 이듬해에는 그곳의 운영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총괄국장 아돌프 그림메(Adolf Grimme)와의 입장 차이 때문에 라인강가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1951년, 그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외신보도의 선구자로서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15분 분량의 라디오 프로그램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는 독일 사회와 점령국의 정치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포맷은 1955년부터 TV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폰 잔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빈트로제(Windrose)'와 함께한 독자적 여정

그의 '빈트로제(바람장미, Windrose)' 보도는 전설이 되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습니다. 공영방송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뒤 폰 잔은 NDR을 떠나 1961년 자신의 제작사인 빈트로제 필름 운트 페른제프로덕치온 GmbH(Windrose Film- und Fernsehproduktions-GmbH)를 설립했습니다. 그의 보도는 무엇보다 '벨트슈피겔(Weltspiegel)' 시리즈 포맷을 개발한 WDR을 통해 방송되었습니다.

다큐드라마의 초기 형태

현대사를 흥미롭게 전달하는 일. 피터 폰 잔은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다큐드라마 형식으로 이를 성공적으로 실현했습니다.

경력 내내 폰 잔은 현대사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오늘날 큰 인기를 누리는 다큐드라마 형식을 통해, 그는 쿠바 미사일 위기 같은 사건을 시청자에게 더 가까이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1980년대 ZDF의 초저녁 프로그램 '세상을 움직인 그림(Bilder, die die Welt bewegten)'에서는 재앙을 비롯한 현대적 주제를 주로 다루었습니다. 1982년 독일 연방공화국 공로훈장을 받은 그는 같은 시기 아나톨 AV 운트 필름프로덕치온 GmbH(Anatol AV und Filmproduktion GmbH)의 경영권을 인수했습니다.

4,000개가 넘는 라디오·TV 프로그램

미국에서 돌아온 후 이 날카로운 관찰자는 아내와 다섯 딸과 함께 함부르크에서 살았으며, 그의 업적을 인정받아 1995년 함부르크 상원으로부터 교수 직위를 수여받았습니다. 여러 TV 작품 외에도 그는 1991년 자서전 '첫 시간의 목소리(Stimme der ersten Stunde)'를 출간했습니다. 이 라디오 선구자의 전체 작품은 약 3,000개의 라디오 프로그램과 1,000개가 넘는 TV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피터 폰 잔은 2001년 7월 26일 함부르크에서 별세해 올스도르프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