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파블로브나(마트베예브나) 파블로바(Anna Pavlovna Pavlova, 1881~1931)는 러시아의 발레리나로,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발레 죽어가는 백조(La Mort du cygne)에서의 연기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클래식 발레 무용수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자신만의 발레단을 이끌고 세계 순회 공연을 처음으로 감행한 인물입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안나 파블로바는 1881년 2월 12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류보프 표도로브나는 세탁부로 혼자 딸을 키웠고, 친아버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안나가 세 살이 되던 해 류보프는 마트베이 파블로프와 재혼했고, 그는 안나를 입양하며 자신의 성을 물려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안나는 어머니와 함께 마리우스 페티파가 안무한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초연 무대를 관람하게 됩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공연에 완전히 매료된 안나는 그 순간 발레에 대한 평생의 열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동화 같지 않았던 시작
아홉 살의 안나 파블로바는 너무 어리고 몸이 "병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제정발레학교 입학을 거절당하지만, 다음 해에는 입학을 허가받습니다. 초기 수련 시절은 험난했습니다. 높은 아치의 발과 길고 가는 다리는 당시 이상적인 무용수의 체형과 맞지 않았고, 젊은 무용수들 사이의 관계도 늘 우호적이지만은 않아 동료 중 일부는 그녀를 놀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안나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열 살이던 첫해부터 학교 학생 발표 무대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녀는 부단히 훈련했고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습니다. 특히 엔리코 체케티는 그녀를 집중적으로 지도했으며, 1906년부터 1908년 사이에는 안나가 체케티의 유일한 제자이기도 했습니다.

죽어가는 백조
안나 파블로바는 1899년 수련을 마치고 코르 드 발레보다 한 단계 위인 코리페 계급으로 제정발레단에 입단했습니다. 파벨 게르트의 가짜 님프들(Les Dryades prétendues) 초연 무대에서 비평가들은 그녀의 연기를 극찬했습니다. 그녀의 스타일은 때때로 정통 학파와 거리가 있었고 약한 발목은 늘 고민거리였지만,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춤으로 무대를 채웠습니다.
뛰어난 재능 덕분에 그녀는 빠르게 성장하여 페티파의 총애를 받는 무용수가 되었습니다. 1901년에는 무용수 마틸데 크셰신스카의 대역으로 라 바야데르 무대에 섭니다.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한 마틸데는 근육이 부족한 안나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 확신하며 오히려 역할 지도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관객과 비평가 모두 안나의 연기에 열광했고, 이는 부인할 수 없는 대성공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1902년 무용수(danseuse), 1905년 수석 무용수(première danseuse)로 임명되었고, 마침내 1906년 프리마 발레리나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1905년, 안무가 미하일 포킨은 카미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제13곡 백조에서 영감을 얻어 죽어가는 백조 역을 그녀를 위해 만들어 줍니다. 몇 분 분량의 이 솔로에 대한 그녀의 해석은 진정한 전설을 탄생시켰으며, 안나는 이 곡을 약 4,000번 공연했다고 전해집니다.
안나의 발레단
1908년, 안나 파블로바는 자신만의 발레단을 창단하고 국제 순회 공연에 나섰습니다. 주로 페티파의 작품이나 그녀를 위해 새롭게 안무된 곡들을 선보였으며, 일부 솔로 작품은 직접 안무하기도 했습니다.
1912년부터 안나는 생애 마지막까지 잉글랜드에 거주하며 영국 발레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자선 공연 개최에도 헌신했는데,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에 남겨진 러시아 고아들을 위해 애썼습니다. 그녀는 생클루에 집을 마련해 열다섯 명의 소녀들이 정착하도록 돕고, 그들의 교육을 위한 기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춤출 수 없다면, 차라리 죽겠어요"

1931년 헤이그에서 순회 공연 중이던 안나는 급성 폐렴 진단을 받습니다. 상태를 치료하려면 무대 생명을 끝장낼 수 있는 수술이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수술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춤출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어요."
안나 파블로바는 1931년 1월 23일 늑막염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백조 의상을 달라는 것이었다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