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라오 조다의 후손: 마르와르를 지킨 라토르 왕조 500년의 역사

라오 조다의 후손: 마르와르를 지킨 라토르 왕조 500년의 역사

왕위 계승의 혼란: 님바, 조가, 사탈

라오 조다(Rao Jodha)의 장남은 님바(Nimba)였지만, 그는 아버지가 생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 부족 수령들은 조다의 다른 아들인 조가(Joga)를 후계자로 선포했으나, 조가의 나태함이 문제가 되면서 1488년 5월 14일 사탈(Satal)이 왕좌에 앉혔고, 조가에게는 빌라라(Bilara)와 카리아(Kharia)의 자기르(봉읍)가 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탈 역시 1491년 3월 13일, 아제르(Ajmer)의 학킴 말루 칸(Hakim Mallu Khan)과의 전투에서 입은 중상으로 인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소우자(Souza)가 마르와르(Marwar)의 라오로 추대되었습니다.

비카의 조드푸르 공성과 왕실 상징물

소우자가 조드푸르(Jodhpur)의 통치자가 되자, 비카(Bika)는 조드푸르에 대한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파디하르 벨라(Padihar Bela)를 조드푸르로 보내 라오 조다의 차트라(왕관 양산)와 참와르(장식 부채) 등 국가 상징물을 요구했습니다. 소우자가 이를 거부하자 비카는 조드푸르를 공격하여 조드푸르 요새를 포위했습니다. 이때 비다는 드로나푸르(Dronapur)에서 3,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비카를 지원하러 왔습니다.

열흘간의 포위전 끝에 소우자의 어머니인 하디 자스마데(Hadi Jasmade)가 직접 비카를 만났습니다. 라즈마타(왕대비)는 비카에게 "당신은 이미 새로운 왕국을 세웠다. 동생들을 살려두면 그들도 잘 지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비카는 "나는 경건한 것만 원한다"고 답했고, 왕대비의 뜻에 따라 다음과 같은 왕실 상징물들이 비카에게 넘겨졌습니다.

  • 라오 조다의 방패와 검
  • 왕좌(탁트)
  • 참와르(장식 부채)
  • 차트라(왕관 양산)
  • 하르부 산클라의 단검
  • 히란야가르바 락시미나라얀 신상
  • 나가네치(Naganechi)의 18개 팔을 가진 신상
  • 카란드
  • 반와르 돌
  • 바이샬 나가라
  • 달싱가르 말
  • 분자이의 데그(대형 솥)

이 물품들 대부분—왕좌, 방패, 검, 단검, 차트라, 참와르 등—은 오늘날 비카너(Bikaner) 요새의 한 방에 보관되어 있으며, 비카너의 국왕은 매년 비자야다샤미(Vijayadashami) 날 이 물품과 신상들에 제사를 지냅니다.

500년 왕조의 명맥과 마르와르의 종말

소우자는 1515년 10월 2일에 사망했으며, 이후 그의 손자 강가(Ganga)가 조드푸르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조다의 후손들은 500년 가까이 적들과 싸우며 마르와르 왕국을 다스려 왔습니다. 1947년 인도가 독립한 후, 마르와르 주는 1949년 라자스탄(Rajasthan) 주에 공식 편입되었습니다.

70명의 아들들과 5만 라토르 군단

라오 춘다(Rao Chunda)에게는 24명의 아들이 있었고, 라오 란말(Rao Ranmal)에게는 26명, 라오 조다에게는 20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즉 이 세 왕만 합쳐도 무려 70명의 아들을 두었던 셈입니다. 역사가 토드(Todd)는 "3세기에 걸쳐 같은 아버지의 혈통을 이은 5만 명의 라토르(Rathore) 군대가 마르와르 왕국에서 형성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지배 아래에는 약 8만 평방마일(약 20만 7천㎢)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