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리헤자 폰 로트링겐(?~1063) – 폴란드 최초의 왕비

리헤자 폰 로트링겐(?~1063) – 폴란드 최초의 왕비

카밀 야차크(Kamil Jadczak)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

리헤자(Richeza)

리헤자는 미슈코 2세 람베르트(Mieszko II Lambert)의 아내이자 폴란드 최초의 왕비로, 1025년 봄 남편과 함께, 그리고 시아버지인 볼레스와프 1세 용감공(Bolesław Chrobry)의 대관과 더불어 왕관을 받았다.

그녀는 모계를 통해 신성로마제국 황실인 리우돌핑(Ludolfing) 가문의 후손이었고, 부계를 통해서는 로트링겐의 명문 귀족 출신이었다. 995년 또는 996년에 태어난 그녀는 1013년 폴란드로 건너왔다. 시아버지의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가 왕관을 손에 넣는 데 기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크라쿠프와 기에츠(Giecz)의 발전, 그리고 쥐에게 잡아먹힌 포피엘(Popiel) 전설의 기초가 된 이야기가 폴란드에 전해지게 된 것도 그녀와 연관 지어 설명된다. 한편 그녀의 가문이 세운 수도원에서 집필된 연대기 작가의 기록에 따르면, 그녀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으며 남편 미슈코의 불륜 문제로 마음고생을 했다고 전한다.

남편이 매부인 베즈프림(Bezprym)이 주선한 정치적 거래의 결과로 추방당하고, 투옥된 뒤 거세까지 당하는 비운을 맞자 리헤자는 나라를 떠났다. 그녀는 자신과 남편의 왕관을 황제 콘라트 2세(Conrad II)에게 바친 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오랫동안 굳어져 온 통설과 달리, 이 행위를 배신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리헤자는 자신과 아들의 왕위 계승권을 지키기 위해 왕관을 넘겼고, 독일 군주의 보호를 받으면서 왕위 회복에 대한 지원을 기대한 것이다.

이후 몇 년간 그녀는 잠시 폴란드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있으며, 아들 카지미에시 1세 복위공(Kazimierz Odnowiciel)을 대신해 비공식적인 섭정 역할까지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아들이 아버지처럼 왕위에서 축출되자, 그녀는 군대를 모집하는 데 힘을 보태고 조상의 유산을 되찾는 데 필요한 재원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리헤자는 1063년 독일에서 생을 마쳤으며, 본인의 뜻과 달리 쾰른의 성모 마리아 교회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