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샤를마뉴.
프랑크 왕국의 통일
샤를마뉴(Charlemagne, 742년 또는 747년생 ~ 814년몰)는 프랑크 왕국의 국왕이자 갱신된 로마 제국의 창건자입니다. 카롤링거 왕조 출신으로 소 피핀(피핀 3세)의 아들이며, 768년 아버지로부터 프랑크 국가의 절반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빠르게 형제 카를로만을 권력에서 밀어냈고, 771년 카를로만이 사망하자 나라 전체를 자신의 통치 아래 통합했습니다.
정복 전쟁과 영토 확장
샤를마뉴는 지칠 줄 모르는 정복자로서 거의 해마다 이웃 민족을 향한 원정을 조직했습니다. 774년에는 롬바르드 왕국을 정복하고 그들의 왕을 폐위한 뒤 스스로 롬바르드의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오랜 전쟁 끝에 엘베 강까지 이르는 작센족의 땅을 정복했으며, 이는 훗날 독일 국가 형성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바이에른의 자립 기반을 무너뜨렸고, 중부 다뉴브 강 유역에 정착한 아바르족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엘베 강 연안(포와비에)의 슬라브 부족과 체코인들도 공격 대상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 세력과의 전투에서는 큰 패배를 겪기도 했습니다.
카롤링거 르네상스와 로마 황제 대관
샤를마뉴는 법률 개혁가이자 문화와 예술의 후원자였습니다. 그의 통치가 누린 전성기는 오늘날 '카롤링거 르네상스'라 불립니다. 800년 12월 25일, 교황 레오 3세는 그에게 로마 황제의 관을 씌워 주었습니다.
'왕'이라는 단어의 어원과 샤를마뉴의 유산
흥미롭게도 슬라브어권에서 사용되는 '왕'을 뜻하는 단어(예: 폴란드어 król)는 샤를마뉴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대 연구에 따르면 샤를마뉴 이후 수백 년간 왕위나 황제 칭호의 개념은 그의 존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서구 문명권에서는 프랑크 통치자의 후손이거나 그의 자손과 혈연 관계에 있는 군주만이 대관식을 거행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념은 폴란드의 볼레스와프 1세(용감왕), 그의 아들 미에슈코 2세, 그리고 최초의 폴란드 왕비 리헤자의 대관식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