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 모시치카(Maria Mościcka, 1896~1979)는 폴란드 대통령 이그나치 모시치키(Ignacy Mościcki)의 두 번째 부인으로, 제2공화국 시대의 마지막 영부인이었다. 그녀의 본명은 마리아 도브란스카(Maria Dobrzańska)로, 1896년에 태어났다.
파탄에 이른 첫 결혼
1919년 마리아는 군인 출신의 타데우시 나구르니(Tadeusz Nagórny)와 결혼했다. 1926년 남편이 새로 취임한 대통령 이그나치 모시치키의 부관으로 임명되면서 두 사람의 운명이 서서히 얽히기 시작했다. 당시 나구르니 부부의 결혼 생활은 이미 사실상 파탄 상태였고, 이듬해 마리아는 아버지를 돌본다는 명목으로 고향으로 떠났다.
한편 타데우시는 대통령과 함께 포즈난을 방문했을 때 기혼자임에도 불구하고 한 여성에게 결혼을 약속하는 어처구니없는 스캔들을 일으켰다. 심지어 그는 그 여성에게서 목돈을 받아 수도 바르샤바에 신혼집을 마련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정부는 필사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고, 마리아는 결국 나구르니와 이혼했다.
영부인의 비서에서 대통령의 아내로
결혼 생활을 정리한 마리아는 당시 영부인이던 미할리나 모시치카(Michalina Mościcka)의 보호를 받게 되었고, 그녀의 개인 비서로 발탁되었다. 마리아는 미할리나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충실히 곁을 지켰으며, 영부인 사후에는 대통령의 요청으로 바르샤바 왕성에서 계속 근무했다.
그러나 미할리나가 죽은 지 석 달 만에 모시치키 대통령이 마리아에게 청혼하면서 거대한 스캔들이 일었다. 이 소식은 해외 언론까지 보도할 정도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933년 10월, 두 사람은 알렉산데르 카코프스키(Aleksander Kakowski) 추기경의 주례 아래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망명과 가난 속의 말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모시치키 가족과 폴란드 정부는 루마니아로 피신했다. 이후 그들은 스위스로 옮겨갔지만, 이곳에서 이그나치는 급여와 외교적 면책 특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두 사람은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다.
대통령 이그나치 모시치키는 1946년에 세상을 떠났고, 마리아는 1979년까지 장수했다. 그녀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의 유산과 업적을 지키며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