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조제핀 드 보아르네(1763~1814): 나폴레옹의 황후, 그리고 250가지 장미를 모은 여인

조제핀 드 보아르네(1763~1814): 나폴레옹의 황후, 그리고 250가지 장미를 모은 여인조제핀 드 보아르네(Joséphine de Beauharnais, 본명 마리 조제프 로즈 타셰르 드 라 파주리)는 1763년 카리브해의 섬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난 크레올 귀족 출신 여성으로, 프랑스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운명을 걸어간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첫 번째 결혼과 혁명의 공포

1779년, 그녀는 프랑스 본토로 건너가 귀족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 자작(Vicomte de Beauharnais)과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프랑스 혁명기에 정치 활동에 뛰어들었으나, 1794년 공포정치의 절정기에 기소되어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조제핀 역시 같은 시기 감옥에 갇혀 처형 직전까지 몰렸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실각으로 요행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 결혼 생활에서 그녀는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들 외젠(Eugène)과 딸 오르탕스(Hortense)입니다.

나폴레옹과의 만남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조제핀은 파리 정치권과 사교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자리매김했고, 1796년 젊은 장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재혼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으로 임명되도록 힘을 보탰으며, 이 원정은 나폴레옹이 군사적 명성을 쌓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황후의 길과 폐위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자 조제핀은 프랑스의 황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나폴레옹 사이에서 자식을 얻지 못했고, 왕조의 계승을 중시하던 황제와 보나파르트 가문의 압박은 날로 거세졌습니다. 특히 시어머니 레티치아(Letizia)는 조제핀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고, 다른 가족들의 비난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부부의 화합을 위협하는 무자녀 문제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았고, 1809년 나폴레옹은 상속자가 없다는 이유로 이혼을 선언했습니다. 조제핀은 황후의 지위를 잃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혈통은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딸 오르탕스는 나폴레옹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와 결혼했고, 그 아들이 바로 훗날 프랑스 황제가 되는 나폴레옹 3세입니다.

장미를 사랑한 원예가

격랑의 정치 속에서도 조제핀은 평생 원예에 깊은 애정을 쏟았습니다. 특히 파리 근교 말메종(Malmaison) 저택의 정원에서 그녀는 당시 유럽에 존재하던 약 250가지 장미 품종 수집에 착수했으며, 이는 근대 장미 품종 개량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사랑한 '말메종의 장미'는 오늘날에도 회화와 원예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조제핀은 1814년 5월, 나폴레옹 퇴위 직후 말메종에서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