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필립 5세(1293~1322): 살리카 법으로 왕위에 오른 프랑스의 '긴 다리' 왕

필립 5세(1293~1322): 살리카 법으로 왕위에 오른 프랑스의  긴 다리  왕

필립 5세(Philippe V le Long, 1293~1322)는 프랑스 카페 왕조의 국왕으로, '긴 다리(le Long)'라는 별칭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필리프 4세 '레 벨(le Bel, 미남왕)'과 나바르 여왕 후아나 1세의 차남으로 태어나, 원래는 왕위와는 거리가 먼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형 루이 10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벌어진 계승 위기 속에서 그는 왕관을 손에 넣게 된다.

계승 위기와 섭정 선언

1316년 루이 10세가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사망하면서 프랑스 왕국은 심각한 계승 문제에 직면했다. 당시 루이 10세의 미망인은 임신 중이었고, 필립은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왕국의 섭정으로 선언되었다. 같은 해 11월 태어난 아들은 요한 1세 '유복자(le Posthume)'로 명명되었지만,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요절하고 말았다.

유복자 왕의 죽음으로 계승은 다시 불투명해졌다. 루이 10세에게는 딸 잔이 있었기에 여성의 계승 가능성도 논의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필립은 신속하게 움직여 1317년 1월 랭스에서 대관식을 거행했고, 이어 열린 삼부회(전국 삼부회)에서 살리카 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여성은 프랑스 왕위를 계승할 수 없으므로 루이 10세의 딸도 왕위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빠른 행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필립이 어린 조카의 죽음에 관여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는 없으며, 유아 사망이 당시로서는 드물지 않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결단력으로 극복한 반대 세력

뛰어난 전략가였던 필립 5세는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왕위에 대한 반대 세력을 성공적으로 무마했다. 잔의 계승권을 지지하는 부르고뉴 공작가 등과의 갈등도 외교적 타협으로 풀어나갔으며, 특히 오랜 현안이었던 플랑드르 문제를 군사 충돌이 아닌 외교 담판을 통해 해결하며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마련했다.

중앙집권화와 경제 개혁

필립 5세의 치세는 실용적인 개혁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왕국의 여러 제도를 중앙집권화하여 행정 효율을 높이고자 했다. 재정 분야에서는 남부 지방 영주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국 전역에 단일 화폐 사용을 강제하며 통화 질서를 확립하려 했다. 아울러 도량형 통일을 추진해 상업과 세금 징수의 혼란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개혁은 아버지 필리프 4세 시대부터 이어진 왕권 강화 노선을 계승한 것으로, 프랑스 중앙집권 국가 발전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죽음과 계승의 종말

그러나 필립 5세의 통치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1322년 1월, 그는 살아남은 아들 없이 병으로 사망했다. 살리카 법의 원칙에 따라 그의 딸들은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고, 왕관은 동생 샤를 4세 '레 벨(Charles IV le Fair)'에게 넘어갔다. 흥미롭게도 필립 자신이 만든 여성 계승 배제의 선례는 결국 자신의 딸들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이 원칙은 이후 카페 왕조 직계가 끊기면서 발발한 백년전쟁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