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발루아의 필립 6세(1293~1350): 백년전쟁의 도화선이 된 프랑스 국왕

발루아의 필립 6세(1293~1350): 백년전쟁의 도화선이 된 프랑스 국왕

발루아 분가의 첫 번째 왕

필립 6세(Philippe VI de Valois, 1293~1350)는 카페 왕조의 직계가 아닌 방계, 이른바 '발루아 분가'의 초대 프랑스 국왕이었다. 그는 필립 4세 '미남왕'(Philippe le Bel)의 동생인 샤를 드 발루아(Charles de Valois)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위 계승과 논란

1328년 사촌형인 샤를 4세 '미남왕'(Charles le Bel)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살아남은 남성 상속자가 없는 상황에서 필립은 프랑스 국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이 계승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는 어머니를 통해 필립 4세의 외손자였기에 자신이야말로 정당한 계승자라고 주장하며 왕위를 넘보았다. 바로 이 갈등이 훗날 백년전쟁(1337~1453)의 불씨가 되었다.

즉위 직후, 카셀에서 플랑드르 진압

논란 가운데 즉위한 필립 6세는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였다. 즉위 직후인 1328년, 플랑드르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을 카셀 전투에서 강력하게 진압하며 새 왕의 권위를 확고히 다졌다.

백년전쟁의 개전과 크레시 참패

필립은 기옌(Guyenne) 지방을 손에 넣고자 에드워드 3세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전쟁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1346년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본토에 상륙했고, 같은 해 벌어진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 왕군은 영국군에게 참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 전투에서 드러난 영국 롱보우의 위력은 중세 기사 문화의 쇠퇴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흑사병의 시대와 말년

필립 6세의 통치기는 또한 '흑사병'이라 불리는 대역병의 시대이기도 했다. 1347년경부터 유럽 전역을 휩쓴 페스트는 프랑스 인구의 상당수를 앗아갔고, 이미 전쟁으로 피폐해진 왕국에 더 큰 혼란과 절망을 안겼다.

1350년 필립 6세가 서거하자, 그의 아들 장 2세 '선왕'(Jean II le Bon)이 왕위를 계승하며 발루아 왕조의 통치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