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은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카딸의 아들이었던 옥타브는, 후사가 없던 카이사르에게 양자로 입양되면서 '옥타비아누스'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카이사르의 유언장에서 후계자로 지명됩니다. 카이사르가 암살되었을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9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양부의 복수를 다짐하며 로마 정치 무대에 강력하게 등장했습니다.

이후 그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와 함께 로마 역사상 두 번째 삼두정치, 이른바 제2차 삼두 정치를 수립합니다. 카이사르보다 한층 정치적으로 세심했던 옥타비아누스는 국가 최고 관직들을 갱신해 가는 방식으로 점차 전권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은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칭호와 파크스 로마나의 시작

기원전 29년경 로마의 내전을 종식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는 역사상 최초로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Augustus)', 즉 '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바로 이 시기에 그는 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라 불리는 장기적인 안정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로써 공화정은 막을 내리고, 황제가 실질적인 권력을 쥐는 원수정(프린키파투스)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종신 호민관 특권과 대대적인 개혁

기원전 23년에는 종신 호민관 특권(플레브스 호민관의 권한)을 부여받아, 원로원의 결정에 대한 거부권과 함께 신체 불가침권까지 확보하게 됩니다. 그는 도로와 같은 인프라 확충, 라틴 문화의 발전, 건축 사업 진흥에 크게 힘썼으며, 군대 개편과 군제 reform을 통한 군사 제도 개혁도 단행하여 제국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죽음 이후에는 신이 되다

로마의 초대 황제로 즉위한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으로부터 '국부(國父, Pater Patriae)', 곧 '조국의 아버지'라는 별칭까지 받았습니다. 그가 서기 14년에 세상을 떠난 후에는 신격화(아포테오시스), 즉 황제를 신으로 모시는 로마의 의식을 통해 신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생몰: 기원전 63년 9월 23일 ~ 서기 14년 8월 19일
신분: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