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배출한 뛰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파니 멘델스존(Fanny Mendelssohn, 1805~1847)은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음악에 평생을 바치는 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
파니 멘델스존은 1805년 11월 14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레아와 아브라함 멘델스존 바르톨디 부부의 딸로 태어나, 베를린의 부유한 지식인 가문에서 성장했습니다. 여동생 레베카와 남동생 펠릭스, 폴과 마찬가지로 유대인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1816년 세례를 받고 개신교 신자로 자랐습니다. 당시 가문의 전통과 구별하기 위해 '바르톨디'라는 성이 채택되었는데, 훗날 파니는 이 성을 몹시 싫어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파니는 훌륭한 교육의 혜택을 입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최고의 스승들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운 그녀는 난곡도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었고, 열네 살에 이미 첫 작품들을 썼습니다. 세 살 아래 남동생 펠릭스 역시 음악적 재능이 남달라, 열두 살 때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꺾여버린 커리어
그러나 두 신동의 운명은 같지 않았습니다. 펠릭스의 재능은 여행, 교육, 콘서트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키워진 반면, 파니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열네 살 딸에게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음악은 펠릭스에게 직업이 될 수 있지만, 너에게는 오직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당시 여성이라는 신분의 한계 속에서 파니는 음악에 대한 열정보다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데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파니는 작곡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녀의 음악을 세상에 알릴 기회는 멘델스존 가문이 집에서 주선하는 소규모 음악회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임에서 파니는 소수의 청중 앞에서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의 작품과 남동생의 곡, 그리고 간혹 자신의 작품까지 선보였습니다. 그녀는 펠릭스와 평생 가까이 지냈고, 동생은 종종 그녀에게 음악적 조언을 구하며 그 재능을 존중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무대 뒤에 머물도록 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남편 빌헬름 헨젤
1829년 파니는 독일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빌헬름 헨젤과 결혼하여 아들 세바스티안 루트비히 펠릭스를 낳았습니다. 이후 음악회는 그녀의 집에서 열렸습니다. 아버지와 남동생과 달리 남편 헨젤은 파니가 연주할 뿐만 아니라 작품을 출판하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펠릭스는 이에 반대했고, 1827년과 1830년에 파니가 작곡한 다섯 곡의 리트(가곡)와 성악·피아노를 위한 이중창이 남동생의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정작 파니의 작품이 그녀 본인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파니는 남편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는데, 특히 로마에 약 6개월 머무는 동안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와 샤를 구노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연주자이자 작곡가로서 두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파니가 세상을 떠난 후 구노는 그녀를 두고 '잊을 수 없는 음악가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 뛰어난 지성을 지닌 여성'이라고 회고했습니다.
400곡이 넘는 소중한 유산
1846년, 40세가 된 파니 멘델스존은 마침내 자신의 작품 출판을 막아온 속박에 맞서 여러 리트와 피아노곡, 합창 성악 작품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847년 5월, 그녀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니는 400곡이 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리트, 피아노와 오르간을 위한 곡들, 실내악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생전에 직접 출판할 수 있었던 작품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남편 빌헬름은 아내가 겪은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그녀의 작품 출판에 평생을 들였지만, 일부 작품들은 무려 1987년에야 비로소 세상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