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멜초르 데 리냔 이 시스네로스 — 페루 제21대 부왕을 임시로 맡은 리마 대주교

멜초르 데 리냔 이 시스네로스(Melchor de Liñán y Cisneros)란?

멜초르 데 리냔 이 시스네로스는 스페인 출신의 고위 성직자로, 페루 부왕령의 제21대 부왕직을 임시로 수행한 인물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돈 프란시스코 리냔 데 시스네로스(don Francisco Liñán de Cisneros), 어머니는 도냐 이사벨 곤살레스(doña Isabel González)였으며, 아버지 쪽 혈통으로는 가톨릭 군주(페란도 2세와 이사벨 1세)를 섬긴 위대한 히메네스 데 시스네로스(Jiménez de Cisneros) 추기경과 친척 관계였다고 전해집니다.

출생과 학업

1629년 스페인 카스티야 지방의 토르델라구나(Tordelaguna)에서 태어난 그는 알칼라 데 에나레스 대학교(Universidad de Alcalá de Henares)에서 수학하여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사제 서품을 받은 후에는 산타 마리아 데 부이트라고(Santa María de Buitrago) 본당의 주임 사제로 임명되며 사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마드리드에서의 경력

1660년 그는 당시 왕국의 수도이자 궁정이 있던 마드리드로 옮겨 산 살바도르(San Salvador) 본당을 맡는 한편, 종교재판소(성무청)의 심사관(calificador)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직책들을 탁월하게 수행한 명성은 훗날 인디아스에서 펼쳐질 화려한 성직·관료 경력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신대륙으로의 진출

1665년, 그는 산타 마르타(Santa Marta) 주교의 품격을 갖춘 채 신대륙으로 건너갔고, 2년 뒤에는 파야얀(Popayán) 교구의 주교좌로 전임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거의 곧바로 누에보 그라나다 왕국(Nuevo Reino de Granada)의 임시 총독 겸 산타페 아우디엔시아(Audiencia de Santafé) 의장으로 임명되었는데(1670), 이때 전임자인 빌랄바 이 톨레도(Villalba y Toledo) 장군에 대한 거주 재판(residencia)을 개시하라는 특별 지시를 받았습니다.

1671년 9월에는 차르카스(Charcas) 대주교로 승진하는 임명장이 발부되었으며, 그는 1675년 8월 12일 해당 직위를 정식으로 인수했습니다.

남미 최고의 성직 자리, 리마 대주교

마침내 왕실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성직 자리인 리마 대주교직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1678년 2월 13일, 그는 리마 대성당 참사회에서 정식으로 영접받으며 이 대좌의 여덟 번째 계승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 당시 부왕이던 카스텔라르 백작(Conde de Castellar)에 대한 비방과 근거 없는 고발이 절정에 달해 있었고, 이에 따라 궁정은 그의 즉각적인 해임과 함께 리마 대주교에 의한 후임 지정을 명령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페루 부왕령의 역대 통치자 가운데 처음으로 성직자가 통치권을 넘겨받게 되었지만, 그 지위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이었습니다.

임시 부왕으로서의 통치 (1678~1681)

돈 멜초르는 약 3년 4개월에 걸쳐 부왕의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은 다음과 같은 주요 사건들로 특징지어집니다.

  • 인디아스 법전의 적용: 1680년에 반포된 『인디아스 법전(Leyes de Indias)』의 준수가 본격화된 시기였습니다.
  • 연안 방어 강화: 워틀링(Watling)과 샤프(Sharp) 등 영국 해적들의 약탈로부터 해안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 포르투갈인 축출: 리오 데 라 플라타(Río de la Plata) 일대에서 소위 '사크라멘토(Colonia del Sacramento)' 식민지를 점거한 포르투갈인들의 배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 종교 행사와 교회 개혁: 1679년 토리비오 알폰소 데 모그로베호(Toribio Alfonso de Mogrovejo) 시복 기념 행사의 엄숙함을 보장했으며, 서한과 목회 칙서를 통해 수녀원 내부의 생활을 개혁하여 도덕을 확립하고 하녀의 과잉 문제를 줄이고자 했습니다.

교구장으로서 그의 행적은 전반적으로 무욕과 금욕의 정신으로 일관되었습니다. 이러한 뚜렷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폐하의 고문'이라는 명예 직위와 함께 푸에블라 데 로스 바예스(Conde de Puebla de los Valles) 백작 작위를 받았으나, 돈 멜초르는 이 작위를 동생 중 한 명에게 양도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1691).

말년과 유산

그는 1708년 6월 28일,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리마 대교구를 계속 다스렸습니다.

그의 유해는 1687년 지진 이후 그가 사비를 들여 재건한 사그라리오(Sagrario) 본당 교회 안, 복음서측 주 제단 옆에 마련된 묘비 아래 안치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