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폐지론자
존 브라운(John Brown, 1800년 5월 9일 ~ 1859년 12월 2일)은 미국의 노예제 폐지 운동가로, 미국 내 노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노예화에 대한 무력 저항이 불가피하다고 믿었던 인물입니다. 1859년 10월 그가 감행한 하퍼스페리(Harpers Ferry) 습격은 미국 남북전쟁을 촉발한 결정적 사건이 되었고, 이 전쟁은 결국 미국에서 노예제를 폐지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퍼스페리 습격 계획
브라운은 코네티컷주 토링턴(Torrington)의 명문 가문에서 태어나 1820년대에 오하이오주로 이주한 뒤 노예제 폐지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시크릿 식스(Secret Six)'라고 불리는 동지들과 함께 버지니아주(현 웨스트버지니아주) 하퍼스페리에 있는 연방 무기고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이를 노예들에게 나눠주어 노예제에 맞서는 대규모 봉기를 일으키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체포와 처형
그러나 하퍼스페리 습격은 실패로 돌아갔고, 브라운은 로버트 E. 리(Robert E. Lee) 대령이 지휘하는 미 해병대 분견대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버지니아 법원에서 반역죄와 살인죄로 재판을 받아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사형을 선고받아 1859년 12월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역사의 전환점이 된 습격
하퍼스페리 습격은 노예제 폐지 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노예제 문제를 둘러싼 북부와 남부의 갈등을 더욱 고착시켰고, 기존에는 온건한 입장이던 많은 북부인들을 급진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브라운은 폐지 운동의 순교자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그의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치열한 논쟁과 기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존 브라운에 대해 알아야 할 추가 사실
- 무두장업자이자 농부였던 오언 브라운(Owen Brown)과 루스 밀스(Ruth Mills) 사이에서 태어난 여덟 자녀 중 장남이었습니다.
- 첫 번째 아내 디안테 러스크(Dianthe Lusk)와의 사이에서 다섯 자녀를 두었습니다. 디안테가 사망한 후 메리 앤 데이(Mary Ann Day)와 재혼하여 13명의 자녀를 더 두었습니다.
- 1850년대에 캔자스 준주로 이주하여 친노예파와 반노예파 간의 격돌에 깊이 관여했으며, 블랙잭 전투(Battle of Black Jack)와 오사와토미 전투(Battle of Osawatomie)에서 반노예 세력을 이끌었습니다.
- 처형 직전 마지막 연설에서 "나, 존 브라운은 이제 확신한다. 이 죄 많은 땅의 죄악은 피로 씻지 않고서는 결코 씻길 수 없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 하퍼스페리 습격은 흔히 '테러리즘'의 사례로 인용되며,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브라운이 목표 달성을 위해 폭력을 행사할 정당성이 있었던 자유 투사였다고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