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티앙 기욤 드 라무아뇽 드 말제르브는 프랑스 왕정 말기의 저명한 법관이자 정치가로, 계몽주의를 후원한 개혁적 관료였지만 동시에 몰락한 왕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
법률 귀족 가문의 총재로 성장하다
1721년 파리에서 태어난 말제르브는 세습적으로 법관직을 지켜 온 유력한 '법복 귀족' 가문의 후손이었다. 그는 175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등법원(Cour des aides)의 총재에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왕립 출판 감독관(directeur de la Librairie), 즉 출판물 검열을 총괄하는 요직에도 오르게 된다.
검열관이 된 『백과전서』의 보호자
흥미롭게도 검열의 최고 책임자였던 말제르브는 계몽주의 사상에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편찬하던 『백과전서(Encyclopédie)』가 발행 금지 조처를 받았을 때, 그는 편찬 작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뒤에서 묵묵히 보호했다. 이러한 그의 배려 덕분에 계몽시대를 상징하는 대작이 완성될 수 있었다.
루이 16세의 각부 장관 시절
1775년,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루이 16세는 말제르브를 왕실 가무국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재상 튀르고(Turgot)가 추진하던 과감한 개혁을 적극 지지했으나, 튀르고가 실각하자 이듬해인 1776년 스스로 사임하고 고향으로 물러나 은거 생활을 보냈다.
국민공회에 선 최후의 변호인
프랑스 혁명이 격화하던 1792년 12월, 폐위된 루이 16세가 반역 혐의로 국민공회에 회부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말제르브는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 나서 왕의 변호를 맡았다. 그는 "왕이 권력을 누릴 때가 아니라, 이제 비참한 포로가 되었을 때야말로 그 곁을 지키겠다"는 취지의 결의를 밝히며 변론에 나섰다. 그의 호소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나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고,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공포정치기의 비극적 최후
왕의 변호인이 된 대가는 잔혹했다. 공포정치기(테러 시대)에 말제르브는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어 혁명재판소에 회부되었고, 1794년 4월 22일 파리에서 단두대에 처형되었다. 그의 딸과 손주들마저 그와 함께 목숨을 잃으면서 가족 전체가 희생된 비극으로 끝났다.
말제르브는 계몽사상의 후원자이자 개혁 지향적 관료였던 동시에, 신분과 시대가 바뀌어도 끝까지 신의와 용기를 지킨 인물로 평가된다. 역사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그를 '구체제(옛 프랑스 사회)가 배출한 가장 고결한 인물 중 하나'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