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55. 사다르 파텔의 사자 포효, 고리(Ghori) 정부를 뒤흔들다

55. 사다르 파텔의 사자 포효, 고리(Ghori) 정부를 뒤흔들다

협약 파기와 가혹한 세금 수탈

사다르 파텔(Sardar Patel)을 감옥에 보낸 직후, 고리(Ghori) 정부는 보르사드(Borsad)와 바르돌리(Bardoli)에서 맺었던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국민들에게 증액된 세금을 강제로 징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농민들은 다시금 옛 저항 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의 폭력적 진압이 날로 심해지면서 많은 농부들은 가족과 가축을 데리고 숲속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남겨진 아이들과 여성들이 경찰의 주요 표적이 되었습니다.

개선되지 않는 경찰, 돌아온 국민의 신뢰

실제로 영국 식민 통치 하에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인도 경찰은 독립 이후에도 제 모습을 찾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스스로를 국민을 위한 공무원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사다르가 감옥에서 나오자 그는 즉시 운동 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지도자가 곁에 있게 되자 국민들 사이에 잃었던 자신감이 되살아났습니다.

사자 포효, 정부를 겁먹게 만들다

바로 그때 한 영국 관리는 "모든 농부가 세금을 내지 않으면 정부가 모두의 토지를 빼앗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사다는 "정부가 모든 농민의 토지를 빼앗는다면 대체 누구를 통치하겠는가?"라고 되물으며 강력히 반박했습니다.

사다는 농민들에게 토지 몰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힘 있게 격려했습니다. 몰수된 토지는 반드시 다시 돌려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다르의 사자 포효 같은 외침에 정부는 크게 겁먹었고, 결국 파텔의 공개 연설을 다시금 금지하고 말았습니다.

제1차 원탁회의의 개최와 좌절

1930년 시몬 위원회(Simon Commission) 보고서가 나온 뒤, 인도 정부는 11개 영국령 주와 566개 번왕국으로 구성된 연방 체제를 수립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문제를 인도 각 정당, 번왕국의 통치자, 그리고 여러 단체 대표들과 논의하기 위해 1930년 11월 12일 런던에서 원탁회의(Round Table Conference)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국민회의당(Congress)은 이미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선언한 상태였고, 이 회의에서는 식민지적 국가 체제가 논의될 예정이었기에 참여를 거부했습니다. 국민회의당의 불참으로 회의가 실패로 끝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지만, 제1차 원탁회의에 참석한 다른 모든 인도 정당들은 영국령 인도 주와 토후국이 하나의 연방을 이루어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짧은 연설로 인한 재투옥

1930년 12월, 사다는 봄베이의 카디(Khadi) 상점 개업식에서 간단한 축사를 했지만, 정부가 그의 연설을 금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체포의 명분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번에는 무려 9개월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제2차 원탁회의와 지도자들의 석방

1930년 제1차 원탁회의가 실패로 돌아가자, 정부는 1931년 제2차 원탁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정부는 국민회의당이 회의에 참여하지 않으면 어떤 회의도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국민회의당의 핵심 지도자들은 모두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인도 정부는 1931년 1월 25일 특별 명령을 발동하여, 국민회의당이 제2차 원탁회의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최고위급 지도자 26명을 석방했습니다. 사다르 파텔 역시 이렇게 석방된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