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탕카멘 왕의 죽음, 세 명의 용의자
투탕카멘 왕은 기원전 1323년경 불과 19세의 어린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은 오랫동안 고고학계의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로 남아 있었고, 자연사인지 아니면 살해인지를 두고 수많은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만약 암살이라면 누가 용의자가 될 수 있을까요? 역사학자들이 주목한 인물은 다음 세 명입니다.
1. 호렘헤브(Horemheb) 장군
호렘헤브는 당시 이집트 군대를 총지휘하던 강력한 군사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훗날 직접 파라오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군대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바탕으로 왕위 찬탈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주요 용의자로 거론되었습니다.
2. 아이(Ay)
아이는 투탕카멘의 가장 가까운 참모로, 어린 왕을 대신해 실질적으로 나라를 통치하던 인물이었습니다. 투탕카멘 사후 왕위를 이어받은 것도 바로 그였습니다. 왕의 죽음으로 가장 직접적인 이익을 얻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살해 음모의 핵심 인물로 의심받았습니다.
3. 안케세나문(Ankhesenamun) 여왕
투탕카멘의 아내 안케세나문은 남편을 제거한 뒤 아이와 재혼하여 왕비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투탕카멘 사후 아이와 결혼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본인의 뜻이 아니라 강요된 선택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녀가 히타이트 왕에게 왕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편지가 전해지는 점도 이 논란을 더욱 깊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세 사람 모두 투탕카멘의 죽음에서 이득을 볼 수 있었던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현대 의학 및 DNA 분석 결과에 따르면, 투탕카멘은 말라리아와 다리 부상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파라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