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캄 후작은 누구였을까?
루이조제프 드 몽캄고종(Louis-Joseph de Montcalm-Gozon), 제2대 몽캄 후작(1712년 2월 28일 ~ 1759년 9월 14일)은 7년전쟁 기간 동안 북미 전선에서 활약한 프랑스의 장군입니다.
몽캄은 프랑스 남서부 가르(Gard) 지방의 칸디악(Candiac)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귀족 가문인 몽캄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군 경력의 시작
1743년 4월, 몽캄은 보병 대령으로 승진했습니다. 2년 뒤에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에 휘말린 이탈리아 전선으로 파견되어 파르마 전투와 피아첸차 전투, 그리고 알레산드리아와 아스티 공성전에 참전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1756년 2월, 몽캄 후작은 소장 계급을 받았고 캐나다 주둔 프랑스 육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같은 해 6월 28일, 그는 병력 3,000명과 함께 브레스트 항을 출발해 퀘벡으로 항해했습니다. 부사령관으로는 슈발리에 드 레비(Chevalier de Lévis)가 동행했습니다.
몽캄의 주요 군사 활동
오스위고 함락 (Capture of Oswego)
1756년 8월, 퀘벡에 도착한 몽캄은 신속히 영국의 오스위고 요새를 공격하기 위한 원정을 준비했습니다. 정규군 1,750명을 포함해 총 3,100명 이상의 병력을 모아 온타리오호를 따라 진군했습니다. 수송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8월 11일 오스위고에 상륙한 그는 다음 날부터 요새에 포격을 개시했습니다. 결국 1,500명의 수비대가 항복에 동의했고, 프랑스군은 오스위고를 점령하고 노획한 물자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윌리엄헨리 요새 전투 (Battle of Fort William Henry)
1757년 8월, 몽캄은 조지호 남안에 위치한 영국 요새인 윌리엄헨리 요새를 포위 공격했습니다. 오스위고를 확보한 덕분에 몽캄은 호수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포함과 배틀보(batteaux)를 거의 방해받지 않고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몽캄은 수비대에게 항복을 설득하기 위해 아베나키(Abenaki) 인디언 무리를 윌리엄헨리 요새로 보냈습니다. 영국군은 명예로운 항복에 동의했는데, 조건은 약 24km(15마일) 떨어진 포트 에드워드까지 안전하게 행군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몽캄은 이 조건을 수락했지만, 많은 아베나키 전사들이 약속을 무시하고 철수하는 영국 병사들을 공격했습니다. 이때 최소 200~300명의 병사와 종군자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리용 전투 (Battle of Carillon)
1758년 7월, 몽캄은 카리용 전투(티콘데로가 전투라고도 불림)에서 프랑스와 캐나다의 정규군 및 민병대를 지휘하며 영국군과 맞섰습니다. 영국의 제임스 애버크롬비(James Abercrombie) 장군은 병력과 대포 면에서 우위에 있었으나, 티콘데로가 요새와 프랑스 진영을 강습으로 함락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의 정면 돌격은 너무나 쉽게 격퇴되었고, 거의 2,000명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습니다.
아브라함 평원 전투와 최후
그러나 몽캄은 영국군의 퀘벡 진격을 막지 못했습니다. 1759년 아브라함 평원 전투(Battle of the Plains of Abraham)에서 그는 한 달 넘게 영국군의 공세를 버텼지만 결국 패배했습니다. 치명상을 입은 몽캄은 다음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렇게 전해집니다. "나는 내 나라가 내 죽음의 복수를 할 것임을 알기에 행복하게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