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회의 연습 문제
문제 1
1938년 9월에 열린 뮌헨 회의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회의에서 독일의 영토 확장 야망과 관련해 논의된 지역은 어디였을까요?
a) 단치히(폴란드)
b) 알자스(프랑스)
c) 주데텐란트(체코슬로바키아)
d) 슐레스비히홀슈타인(덴마크)
e) 오스트리아
문제 2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에 대한 독일의 영토 확장 의도는 19세기 이후 독일에서 널리 퍼져 있던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나치즘은 이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념은 무엇일까요?
a) 라이히스탁(Reichstag, 제국의회)
b) 베어마흐트(Wehrmacht, 국방군)
c) 슈베르푼크트(Schwerpunkt, 주공점)
d) 레벤스라움(Lebensraum, 생존 공간)
e) 블리츠크리크(Blitzkrieg, 전격전)
문제 3
뮌헨 회의는 무솔리니의 제안으로 개최되었으며, 주데텐란트 병합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영국 총리도 참석했습니다. 당시 영국 총리가 추진한 정책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a) 외교 정책
b) 평화 협상 정책
c) 영토 협상 정책
d) 평화 구축 정책
e) 유화 정책(Appeasement Policy)
문제 4
뮌헨 회의에는 여러 나라의 대표가 참석했습니다. 다음 인물 중 1938년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a) 폴 레노(Paul Reynaud)
b) 에두아르 달라디에(Édouard Daladier)
c) 아돌프 히틀러
d) 베니토 무솔리니
e) 네빌 체임버린
정답 및 해설
문제 1 — 정답: C
뮌헨 회의는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지역을 점령하고 병합하려는 야심으로 촉발된 외교 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열렸습니다. 이 지역에는 독일계 주민(주데텐 독일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고, 히틀러는 이를 독일 영토 병합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회의의 결과, 독일은 주데텐란트를 점령할 권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문제 2 — 정답: D
아돌프 히틀러가 내세운 영토 확장주의는 '레벤스라움(Lebensraum, 생존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이념적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이 개념은 독일인이 '우월한 민족'이므로, 역사적으로 게르만 계통 민족이 거주했던 광대한 영토까지 포괄하는 제국을 건설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제 심화 학습: 나치의 '생존 공간(Lebensraum)'이란 무엇이었을까?
문제 3 — 정답: E
네빌 체임버린과 에두아르 달라디에가 추진한 노선은 '유화 정책(appeasement policy)'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정책의 기본 생각은 유럽 대륙에서 새로운 전면전이 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독일에게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최대한 양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뮌헨 회의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이 더 이상의 영토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겨주었습니다.
문제 4 — 정답: A
폴 레노는 뮌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에두아르 달라디에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고 있었습니다. 달라디에와 달리 레노는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양보함으로써 사태를 '무마'하는 방식에 반대했으며, 오히려 나치의 위협에 정면으로 맞서는 강경 정책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1940년 약 석 달간 프랑스 총리를 지냈습니다.
함께 학습하기: 나치즘(Naz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