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1
(UFRJ) 아즈텍 문명의 중심이었던 지역은 오늘날 다음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
a) 멕시코
b) 카리브해 지역
c) 미국 태평양 연안
d) 페루
e) 베네수엘라
문제 2
(UFES 변형)
“아즈텍인(Azteca) 또는 멕시카인(Mexica)은 1519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도착했을 당시 멕시코 대부분의 지역을 눈부신 영광과 함께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의 언어와 종교는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북쪽의 건조한 지역에서 과테말라에 이르는 광대한 땅에 걸쳐 힘을 발휘했다. 그들의 군주 모테쿠소마의 이름은 그 광대한 영토 전역에서 존경 혹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짐꾼 무리를 거느린 상인들은 온 나라를 사방으로 누비며 다녔다. […] 수도 테노치티틀란(멕시코)에서는 건축과 조각이 비할 데 없는 발전을 이루었고, 의복, 식탁, 정원, 보석 장식에서 사치가 만개하고 있었다.” — J. 수스텔(J. Soustelle), 『아즈텍 문명』, 리우데자네이루: Jorge Zahar, 1987, p.7.
위 자료에 제시된 특징을 고려할 때, 아즈텍 문명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a) 기본적인 사회 단위는 칼풀리(calpulli)로, 공동 토지 소유권을 가진 주거 공동체였으며 행정·사법·군사·재정적 성격의 내부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b) 전통에 따르면 1325년에 건립된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원거리 무역의 중심지이자 장인과 상인이 모여드는 요충지였으며, 아즈텍 세력의 확장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c) 경제는 농업에 기반을 두었으며 옥수수와 콩 재배가 중심이었다. 특히 친남파(chinampa, 호숫가 습지에 진흙과 수생 식물을 쌓아 만든 작은 인공 섬)는 관개 농업에서 사용된 가장 혁신적인 재배 기술이었다.
d) 아즈텍 사회는 이중적 위계질서가 지배했다. 하나는 높은 군사·민간 직책을 맡은 귀족들의 서열이고, 다른 하나는 사제들의 서열이었다. 정점에는 왕(우에이 틀라토아니, Huey Tlatoani)이 있었으며, 그 지위는 선출직이었다.
e) 아즈텍 문명에서는 종교 의식에서 인신공양(human sacrifice)을 행하지 않았다.
문제 3
이 도시는 주민 수(약 20만~30만 명으로 추정)와 웅장한 건축물로 스페인 사람들을 압도하며 감탄시켰고, 1521년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의 지휘 아래 정복당했다. 우리가 말하는 도시는?
a)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b) 칼풀리(Calpulli)
c)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d) 유카탄(Yucatan)
e) 몬테수마(Montezuma)
문제 4
칼풀리(calpulli)는 아즈텍 행정 구조의 일부로서 다음 중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가?
a) 오직 신전의 유지·보수만 담당했다.
b) 오직 인신공양의 집행만 담당했다.
c) 모든 의례와 종교 축제의 조직 및 신전 유지를 담당했다.
d) 세금 징수와 납세 불이행자에 대한 처벌을 담당했다.
e) 농업 노동의 조직, 과세, 종교 활동, 교육, 전사 징집을 담당했다.
정답 및 해설
문제 1 — 정답: A
아즈텍인들은 오늘날의 멕시코에 해당하는 지역에 거주했다. 아즈텍의 영향권 일부는 과테말라까지 뻗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아즈텍 영토는 현재의 멕시코에 위치해 있었다. 참고로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아즈텍의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 위에 세워졌다.
문제 2 — 정답: E
E 선택지가 틀린 이유는, 인신공양이 아즈텍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인신공양은 아즈텍 신화의 주요 신 중 하나인 위칠포치틀리(Huitzilopochtli)에게 감사를 표하는 방식으로 여겨졌다. 또한 케찰코아틀(Quetzalcoatl)과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 같은 다른 신들에게 바치는 의식에서도 인신공양이 행해졌다. 희생자는 주로 노예나 전쟁 포로였으며, 의식은 보통 희생자의 심장을 적출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다.
문제 3 — 정답: C
테노치티틀란은 1325년 멕시카족(Mexica)이 텍스코코 호(Lake Texcoco)의 섬 위에 세운 도시다. 1519년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했을 당시 이 도시에는 약 30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 4 — 정답: E
칼풀리는 다양한 사회·경제·종교적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행정 단위였다.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구역에는 약 다섯 개의 칼풀리가 속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