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퀴즈

미국과 이란, 70년에 걸친 갈등의 역사

미국과 이란, 70년에 걸친 갈등의 역사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수십 년간 깊은 불신과 적대감으로 얼룩져 왔습니다. 쿠데타와 인질극, 전쟁, 제재, 암살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갈등은 중동 정세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주요 사건들을 연대기 순으로 살펴봅니다.

1953년: CIA가 배후에 있던 쿠데타

1953년 미국은 이란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를 축출하는 쿠데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친서방 성향의 샤(국왕)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가 권좌에 복귀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모사데그의 이란 석유 산업 국영화 등 민족주의 정책이 이란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 것을 우려했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과 인질 사태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샤 정권이 무너지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새 정권은 서구 제국주의와 착취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미국에 깊은 적대감을 드러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미국 외교관과 시민 52명을 444일간 인질로 붙잡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이 인질 사태는 양국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정보, 군사 장비, 재정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라크를 지원했습니다. 아울러 이란에 대한 여러 비밀 작전도 수행했는데, 그중에는 레바논에서 억류된 미국인 인질의 석방을 조건으로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이란-콘트라 사건'도 포함됩니다.

1995년: 코바르 타워스 폭탄 테러

1995년 사우디아라비아 코바르 타워스의 미군 숙소 인근에서 트럭 폭탄이 폭발해 미군 병사 1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국은 이란이 폭탄 테러의 배후에 있다고 비난했으나, 이란은 어떤 개입도 부인했습니다.

2002년: '악의 축' 발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2년 국정연설에서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명시적으로 규정했습니다. 이 발언으로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한층 더 경색되었습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많은 이란인들에게 자국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란은 미국이 다음 단계로 이란을 침공할 가능성을 우려해 억지력 확보 차원에서 핵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2007~2015년: 핵 협상

2007년 미국과 세계 강대국들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놓고 협상에 착수했습니다. 긴 협상 끝에 2015년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이른바 이란 핵합의가 체결되었습니다. 이 합의에 따라 이란은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신 경제 제재 해제라는 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2018년: 미국의 JCPOA 탈퇴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JCPOA 탈퇴를 선언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재개했습니다. 미국은 군사적 위협, 사이버 공격, 경제 제재 등을 포괄하는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캠페인을 이란에 본격적으로 가했습니다.

2019년: 긴장 고조

2019년 이란이 미국 드론을 격추하고 미국이 전함과 폭격기를 페르시아만에 파견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크게 고조되었습니다. 두 나라는 여러 차례 전쟁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습니다.

2020년: 카셈 솔레이마니 암살

2020년 1월, 미국은 드론 공습으로 이란의 카셈 솔레이마니 장군을 암살했습니다. 솔레이마니는 이란 혁명수비대(IRGC) 소속 정예 부대인 쿠드스군의 사령관이었습니다. 그의 암살로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2021년: 핵 협상 재개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과 이란은 핵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습니다. 협상은 계속 진행 중이며, 성공 여부는 여전히 지켜볼 일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상호 불신 위에서 반복적으로 악화와 완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핵 문제를 둘러싼 교섭이 계속되는 가운데에도, 과거의 갈등 기록은 양국 관계가 여전히 쉽게 풀리지 않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