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나라(약 기원전 1600년~기원전 1046년) 시대에는 사물에 새긴 글자 그 자체가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로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실제 예측 수단은 갑골점(甲骨占)이라 불리는 점술이었으며, 이는 귀갓껍질이나 짐승의 뼈를 가열한 뒤 생기는 균열의 형태를 해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갑골점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점을 치는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습니다.
① 점관(占官)이 거북이 배딱지(복갑)나 소의 어깨뼈 같은 동물 뼈를 준비합니다.
② 뼈의 뒷면을 파내거나 홈을 만든 뒤, 달군 금속 막대기 등으로 가열합니다.
③ 열에 의해 뼈 표면에 ‘卜’ 자 모양의 균열이 나타납니다.
④ 점관은 균열의 방향, 모양, 길이를 해석하여 길흉을 판단했습니다.
상나라 왕들은 전쟁, 농사, 제사, 출행 등 중요한 일마다 이러한 점을 치게 했으며, 점의 결과는 국정 운영의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글자는 왜 새겨졌을까?
흥미로운 점은, 점을 친 뒤에 물어본 질문·날짜·점괘 해석·실제 결과 등을 뼈 표면에 새겨 기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남긴 문자가 바로 한자의 가장 오래된 형태인 갑골문(甲骨文)입니다.
즉, 글자는 미래를 비추는 도구가 아니라 점의 내용과 결과를 후세에 남기는 기록 수단이었던 셈입니다. 오늘날 갑골문은 상나라의 정치·종교·사회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1차 사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