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은 그리스와 터키를 지원하기 위해 의회에 4억 달러의 재정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 요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 소위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의 핵심 축이었습니다. 트루먼은 미국이 이들 국가가 공산주의 세력의 침투에 저항하도록 돕는 것은 도덕적이자 전략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의무라고 강조했습니다.
내전으로 혼란에 빠진 그리스
그리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내전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그리스 민주군(DSE)과 미국·영국의 지원을 받는 그리스 정부군 간의 충돌이 계속되면서, 그리스 정부는 인접 공산권 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DSE로부터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됩니다. 만약 그리스 정부가 무너진다면 동지중해 전체가 공산주의 진영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소련의 압박에 놓인 터키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 터키 역시 공산 진영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소련은 흑해 해협(다르다넬스·보스포러스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비롯한 영토상의 양보를 터키에 요구했고, 나아가 터키 내 분리주의 세력에까지 지원 손길을 뻗치고 있었습니다. 흑해 해협은 소련 함대가 지중해로 진출하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서방 진영にと해서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논란 끝에 통과된 지원안
트루먼의 지원 요청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미국 내에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뒤 다시 해외 분쟁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트루먼은 공산주의 확산을 방치하면 더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며 설득에 나섰고, 의회는 결국 이 요청을 승인합니다. 이렇게 마련된 자금은 그리스와 터키가 공산주의 영향력에 맞서 독립과 주권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냉전 외교의 초석이 된 트루먼 독트린
트루먼 독트린은 이후 냉전 시기 미국 외교 정책의 기본 틀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억제(containment)'하겠다는 원칙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 바로 이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념적 성격을 띤 분쟁에 미국이 개입하는 선례를 남겼으며, 미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