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2세는 누구였나?
찰스 2세(Charles II, 1630년 5월 29일 ~ 1685년 2월 6일)는 1660년부터 1685년 서거할 때까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국왕이었다. 그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국왕 찰스 1세와 프랑스 출신 가톨릭 신자인 앙리에타 마리아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로, 왕정복고 이후 3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초기 생애와 내전
아버지의 재위 기간 동안 찰스는 제1차·제2차 잉글랜드 내전에서 왕당파 군대를 지휘하며 서부 지방과 웨일스에서 군사 경험을 쌓았다. 1646년 왕당파가 패배하자 유럽으로 망명하여 프랑스, 네덜란드, 채널 제도에서 지냈다. 1651년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선언되고 스콘에서 대관식을 거행했으나, 같은 해 올리버 크롬웰의 군대에 우스터 전투에서 패배하며 다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왕정복고
1660년 잉글랜드 의회는 찰스를 국왕으로 맞이하기로 결정하면서 왕정복고가 실현되었다. 그의 즉위는 크롬웰 부자의 공화정 통치 시기였던 '공백기(Interregnum)'의 종언을 의미했다. 찰스 2세는 1661년 4월 23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정식 대관식을 거행했다.
국내 정책
찰스 2세의 통치는 몇 가지 중요한 국내 정책으로 특징지어진다. 잉글랜드 국교회 성직자들에게 『공동기도서』 준수를 강제한 통일법(1662), 가톨릭 교도와 비국교도 개신교 신자들을 제약한 클래런던 법전(1661~1665), 그리고 모든 공직자가 국교회 의식에 따라 성찬을 받고 화체설을 부인하도록 요구한 심사법(1673, 1678)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그의 재위 내내 종교적 긴장과 갈등을 낳았다.
외교 정책
대외적으로 찰스 2세는 친프랑스 노선을 택해 네덜란드 공화국에 맞선 프랑스와의 동맹을 추진했다. 이 정책은 1660년대부터 16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영국-네덜란드 전쟁으로 이어졌다. 또한 1668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조카이자 왕위 계승자인 요크 공작 제임스를 지원했는데, 이것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제임스의 왕위 계승 가능성을 두고 벌어진 정치적 갈등, 이른바 '배제 위기'로 번졌다.
개인 생활과 유산
찰스 2세는 수많은 정부와 사생아로 유명한 쾌락 지향적인 군주라는 평판을 받았다. 그는 브라간사의 카타리나와 결혼했지만 적법한 후계자를 두지 못했으며, 1685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자 동생 제임스 2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찰스 2세의 통치는 영국 역사에서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시기였다. 종교적·정치적 분열이라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위 기간은 문화와 과학이 꽃피운 시대이기도 했다. 왕립학회 설립을 비롯한 과학 진흥과 더불어 영문학과 예술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