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월 30일, 미 공군의 대규모 공습을 받은 뉘른베르크 시는 단 한 시간 만에 폐허가 되었고, 남아 있는 건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 역사 지구 동쪽에 자리한 법원은 온전하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였습니다.
독일에서는 재판을 앞둔 피고인을 수감하기 위해 감옥과 법원을 함께 짓는 것이 오랜 관례였습니다. 뉘른베르크 법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뉘른베르크가 나치당의 발상지로 여겨진다는 사실까지 더해지자, 승전국인 동맹국들은 나치당이 시작된 이곳에서 나치당의 완전한 종말을 선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건물의 주 법정은 이처럼 중대한 재판을 열기에 충분히 웅장한 공간이었습니다. 동맹국은 국제군사재판소를 구성하고, 피고인석과 다수의 공인 언론 기자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법정의 배치를 새롭게 조정했습니다.
1945년 11월 20일, 나치 정권 고위 관리 24명이 재판대에 오르는 첫 번째 뉘른베르크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피고인 중 최고위직은 정권의 2인자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이었습니다. 함께 기소된 인물로는 1940년까지 히틀러의 비서를 지낸 루돌프 헤스(Rudolf Hess), 칼 되니츠(Karl Dönitz) 제독, 히틀러의 개인 친구이자 군수 장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 독일 국방군 참모총장 빌헬름 카이텔(Wilhelm Keitel) 원수, 그리고 데어 슈튀머(Der Stürmer) 잡지의 전 편집장 율리우스 슈트라이허(Julius Streicher) 등이 있었습니다.

피고인들은 평화에 반한 죄와 인도에 반한 죄로 기소되었습니다. 1946년 10월 1일, 판결이 개별적으로 선고되었습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베를린의 슈판다우 교도소로 이송되었고, 사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같은 해 10월 16일 처형되었습니다. 유해는 화장된 뒤 이자르 강에 뿌려졌습니다.
뉘른베르크 법원 가는 방법
법원은 뉘른베르크 역사 중심가의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하철 U1호선을 타고 Bärenschanze역에 내리면 됩니다. 아래 링크에서 목적지까지의 최적 경로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 현장 방문하기
나치 지도자들의 재판이 열렸던 뉘른베르크 법원은 오늘날에도 실제 법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방문객은 나치당의 종말을 다룬 재판과 관련된 방대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재판이 진행되었던 법정 역시 지금도 사용 중이므로, 진행 중인 재판이 없을 때에만 방문이 가능합니다. 개장 시간과 티켓 가격은 뉘른베르크 재판 기념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