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난 뒤 폴란드의 이 역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말하려는 시도 자체가 분노를 삽니다. 나치가 아닌 수용소가 존재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리고 처형자가 독일인이 아니라 폴란드인이라니? 『작은 죄악(Mała zbrodnia)』의 저자 마레크 우슈치나(Marek Łuszczyna)와 함께, 자국의 더러운 비밀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야기해 봅니다.
'폴란드 수용소'란 정확히 무엇인가
주잔나 펨사(Zuzanna Pęksa): 『작은 죄악』에서는 "폴란드 수용소"라는 용어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일부 사람들에게 분명히 충격을 주는 이 명칭 안에는 정확히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먼저 설명해 주시겠어요?
마레크 우슈치나(Marek Łuszczyna): 이 명칭은 공공안전부가 운영하던 206개 수용소 중 일부를 가리킵니다.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은 국제법의 정의에 정확히 부합합니다. 강제수용소란 재판 없이 사람들을 격리하고, 물과 식량을 무기한 동안 제한하는 장소입니다.
Z.P.: 책 끝부분에서 이 용어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소개했는데, 이런 명칭으로 개미집에 막대기를 찌를까 두렵지 않았습니까? 일부는 이곳이 어차피 보안기관이 설치한 수용소이고, 폴란드인들이 단순히 일자리를 맡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M.Ł.: "폴란드"라는 단어의 문제는, 결과적으로 보면 비톨트 곰브로비치(Witold Gombrowicz)의 표현대로 "너무 폴란드인이고 너무 사람답지 못한" 이들에게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애국자"는 언제 어느 시대에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폴란드식으로 말하지 마라, 아예 말하지도 마라" — 최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린 트롤이, 국수주의적 자부심에 부풀어 오른 폴란드인들의 관점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폴란드 수용소 라는 용어에 충격을 받으셨나요? 전후 폴란드 강제수용소의 충격적인 실상 [인터뷰]](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023055705.jpg)
전후 폴란드에서 운영되던 수용소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지도. 마레크 우슈치나의 책 『작은 죄악』(Znak Horyzont, 2017)에서 발췌.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책을 쓰게 된 계기: 분노
Z.P.: 이 주제는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간과했고, 일반론으로만 다뤄왔습니다. 깊이 파고들기로 결심한 첫 번째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M.Ł.: 첫 번째 계기는 완곡히 말하자면 분노였습니다. 제3공화국의 기득권 전체, 즉 바르토셰프스키 교수, 예지 부젝,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등 폴란드 역사의 기만을 바로잡을 수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았던 수많은 인사들에 대한 분노였죠. 그들의 정치적 계산에 놀랐습니다. "아예 입 밖에 내지 말자"고 크게 외치진 않았지만, 실제로는 정확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Z.P.: 맞습니다. 존경받는 인물들조차 폴란드 수용소에 대해 침묵했습니다. 『작은 죄악』의 집필 과정은 일반적인 역사서를 쓰는 것보다 오히려 수사에 가까웠습니까?
M.Ł.: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최고위 국가 관료부터 포툴리체(Potulice) 주민들까지, 거의 모두가 피하고 침묵했습니다. 포툴리체 주민들은 대량 매장지를 보여주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독일의 잔재"라며 꺼렸기 때문입니다.
![폴란드 수용소 라는 용어에 충격을 받으셨나요? 전후 폴란드 강제수용소의 충격적인 실상 [인터뷰]](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023055930.jpg)
전후 폴란드 강제수용소에 관한 충격적인 진실은 마레크 우슈치나의 책 『작은 죄악』(Znak Horyzont, 2017)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둠 속의 희망: 인간성을 지킨 사람들
Z.P.: 애틋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많지만, 수용자들을 잘 대해준 폴란드인들에 대한 희망적인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총을 어깨에 걸치고도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더 들려주시겠어요?
M.Ł.: 물론입니다. 고문을 하지 않고 새 정권을 경멸하며 수용소를 테러의 상징으로 여긴 폴란드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가져와 울타리 너머로 수용자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때로는 감시자조차 인간이었고, 그런 음식을 나눠주는 이들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볼셰비즘에 굴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성냥처럼 부러졌습니다.
가장 마음에 남은 증언: 도로타 보레체크의 이야기
Z.P.: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책에 담긴 이야기 중 가장 마음을 울린 것은 무엇입니까?
M.Ł.: 단연 도로타 보레체크(Dorota Boreczek) 여사의 이야기, 즉 그녀가 즈고다(Zgoda) 수용소에서 겪은 놀라운 운명입니다. 그녀의 동료 고생꾼이 다락 위에서 죽었고, 여주인공에게 기쁨이 번쩍였던 그 순간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담요를 하나 가질 수 있겠구나." 이 모든 공포를 겪은 후 보레체크 여사는 독일로 갔고, 1970년대에는 민주야당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경찰관이 그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슈타지(Stasi)가 당신을 위해 뭔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보안기관이 무엇인지 알기나 합니까?"
![폴란드 수용소 라는 용어에 충격을 받으셨나요? 전후 폴란드 강제수용소의 충격적인 실상 [인터뷰]](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023060126.jpg)
옛 즈고다 수용소 부지의 문-기념비 (사진: Zgoda camp, gate-monument; CC BY-SA 4.0 라이선스).
사실 부정의 배경: 잘못 이해된 국익
Z.P.: 이 사례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사실 부정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증거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추측이 아닌데도, 왜 모래속에 머리를 묻는 걸까요?
M.Ł.: 잘못 이해된 국익 때문입니다. 차례로 집권한 세력마다 "지금은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제 호황이 없으니까, 독일에서 선거가 있으니까, 폴란드에서 선거가 있으니까. 이웃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여론을 계몽하는 일 같은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관계만이 중요했습니다. 사회적 관계 구축이라는 과제를 짊어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조용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일이 더 부유하고 현명하니, 그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언급할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전후사 서술을 보십시오. 우리는 PKWN 선언, 3회 국민투표, 비에루트(Bierut)의 대통령 취임 등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 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끊임없는 약탈의 위협 속에서, 이전에 빼앗은 집을 지키겠다고 홀로코스트를 살아남은 유대인까지 죽일 준비가 된 타락한 이웃들 사이에서 살아냈다는 사실 말입니다.
집필 후 남는 감정,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
Z.P.: 수용소를 주제로 한 책은 독자에게만이 아니라 저자에게도 큰 경험이 됩니다. 이런 출판물을 쓴 후 남는 감정을 어떻게 다룰 수 있습니까?
M.Ł.: 감정은 반드시 소화해내야 합니다. 절대 억누르거나 잘라내면 안 됩니다. 술에 의존하는 치료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혼자만의 많은 시간은 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