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IHGB와 브라질사: 제2제정 시대, 브라질 국민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IHGB와 브라질사: 국민 정체성을 만들다

브라질 제2제정(Second Reign)과 브라질 역사의 관계는 무엇보다 '국민 정체성'의 창조라는 목적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는 제2제국의 가장 근본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IHGB와 브라질사: 제2제정 시대, 브라질 국민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글: Me. Cláudio Fernandes

1831년 페드루 2세(Pedro II)와 함께 브라질에 제2제정이 시작되면서, 젊은 황제를 둘러싼 정치·지식인 계층의 핵심 인물들에 의해 진정한 '국가의 건축'이 세심하게 구상되고 실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지식인 중 한 명이 바로 조제 보니파시우 드 안드라다 이 실바(José Bonifácio de Andrada e Silva)로, 브라질 국민국가의 통합과 공고화 정책을 이끈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브라질 역사·지리연구소(IHGB)가 탄생했습니다.

IHGB의 설립 배경

IHGB는 1838년, 사제 자누아리우 다 쿠냐 바르보자(Januário da Cunha Barbosa)와 원수 라이문두 조제 다 쿠냐 마토스(Raimundo José da Cunha Matos)의 제안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창립자들의 영감은 전적으로 유럽적, 특히 프랑스적인 것이었습니다. IHGB의 주요 기능은 국가를 구성하는 각 지역에 대한 연구 의제를 추진하고 과학적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브라질이라는 나라의 복잡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문화적·사회적·정치적 정체성의 생산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 보고서들은 연구소의 분기 학술지에 게재되었습니다.

'브라질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이런 흐름 속에서 IHGB에게 '브라질의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수립하는 임무는 필수적이 되었습니다. 즉, 역사학적 방법과 개념을 통해 국가의 형성 과정, 그것을 구성한 인종들, 브라질을 낳은 지리적·기후적·경제적 요인 등을 설명할 수 있는 브라질 정체성의 모델적 표상을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연구소가 구상한 이 '브라질사'는 브라질 인구 전체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지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가 안토니우 A. 디헬(Antônio A. Dihel)이 강조했듯이, "IHGB는 역사학적 지식의 생산을 통해 무엇보다 사회 피라미드 정점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계몽을 주고자 했으며, 그들은 다시 나머지 사회에 계몽을 전파했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브라질 국민에 대한 사유의 핵심이 놓여 있던 지점이었다." (Dihel, Antônio Astor. Historiographical culture: from the IHGB to the 1930s. Passo Fundo: Ediupf, 1998. p. 25)

칼 폰 마르티우스와 '삼인종 조화론'

이를 위해 IHGB는 1846년, 브라ziel사 집필 매뉴얼을 준비할 의향이 있는 지식인들에게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독일 출신의 연구자이자 여행가인 칼 폰 마르티우스(Carl von Martius)였습니다. 마르티우스와 함께 브라질사의 표준 모델이 탄생했습니다. 이 모델은 세 인종, 즉 원주민 인디오, 백인 유럽인, 흑인 아프리카인의 조화로운 융합과 광대한 영토가 브라질 국민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핵심 축으로 삼았습니다. 폰 마르티우스의 모델은 브라질사를 사유하도록 이후 여러 세대의 역사가와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오늘날의 IHGB

오늘날까지도 IHGB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변화하는 브라질의 현실에 맞춰 스스로를 적응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그 설립 원칙은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역사와 지리에 필요한 문서를 수집하고, 체계화하며, 출판하거나 보존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