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나치식 '세례'의 실체: 교회도 성수도 없던 힘믈러의 SS 명명 의식

교회에서? 세례반 앞에서? 혹시 조용한 예배당에서? 전혀 아니다. 친위대 전국지도자 하인리히 힘믈러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고안해냈다. 사제도 목사도 성수도 필요 없었다. 갓난아기와 그의 부모, SS 기사단의 대표자 몇 명, 그리고 소품 몇 가지만 있으면… 나치식 세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경찰, SS, 게슈타포의 수장이었던 그의 생각에 따르면, 진정한 독일인, 즉 게르만 정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친위대(Schutzstaffel)의 일원이라면 교회나 종교 단체에 다니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 성경과 성수로 장식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모든 가족 행사는 가족만의 사적인 공간에서 치르거나, 아니면… SS 동료들 앞에서 화려한 의전과 함께 거행되어야 했다.

나치식  세례 의 실체: 교회도 성수도 없던 힘믈러의 SS 명명 의식

하인리히 힘믈러는 진정한 나치주의자가 자녀를 교회나 종교 단체에서 세례받게 할 수 없다고 믿었고, 그래서 자신만의 의식을 직접 만들어냈다(출처: Bundesarchiv; lic. CC AS 3.0).

'우월 인종'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괴한 의식

SS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까지 뻗어 나간 광범위한 이데올로기를 지닌, 일종의 기사단 같은 조직이었다. '지배 인종'의 신생아를 '초인'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일마저도 기독교 세례와는 거의 공통점이 없는 특별한 의식으로 치러야 했다.

먼저 아리아 신생아는 흰 천이 아니라 SS의 상징, 곧 잘 알려진 두 개의 '번개 무늬'(나치 상징 체계에서 이것들은 승리를 뜻하는 룬 문자였다)가 새겨진 스카프로 감싸졌다. 이렇게 준비된 아기는 제3제국의 깃발로 덮인 제단 위에 올려졌다. 그다음이야말로 본격적인 '세례'의 순간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의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특별한 축복문이 낭독되었고, 이후 기쁜 아버지의 상관이 무려 [sic!] SS 단검으로 아기를 건드렸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우리 아기를 칼날로 간질이는 광경은 차마 보고 싶지 않다! 의식의 마무리로 아기에게는 선물이 주어졌는데, 은으로 만든 그릇, 역시 은으로 빚은 숟가락, 그리고 실크 손수건이었다.

나치식  세례 의 실체: 교회도 성수도 없던 힘믈러의 SS 명명 의식

하켄크로이츠? 비치되어 있다! 『나의 투쟁(Mein Kampf)』? 놓여 있다! 총통의 초상화? 물론 걸려 있다! 이제 의식을 시작할 준비가 끝났다!

의식은 '대부'와 비슷한 역할을 맡은 사람이 집행했다. 저서 『아버지들의 그림자』의 저자 옌스-위르겐 펜츠키(Jens-Jürgen Ventzki)에 따르면, 언제나 SS 장교였던 이 나치 주례자는 의식 중에 다음과 같은 독특한 신앙 고백을 낭송했다고 한다:

우리는 우주 안에 계신 신을 믿으며,
독일 땅에서 어린 생명을 키워내는 우리 독일 피의 사명을 믿는다.
우리는 그 피를 이어받는 자를 믿으며,
신이 우리에게 임명한 총통을 믿는다.

이 글은 주로 옌스-위르겐 펜츠키의 저서 『아버지들의 그림자(Cień Ojców)』(Literatura Fakt PWN, 2012)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카롤 그륀베르크(Karol Grünberg)는 저서 『SS: 히틀러의 검은 근위대』를 통해 펜츠키의 기술에 몇 가지 중요한 세부 사항을 보탠다. 그에 따르면 이 명명 의식은 두 가지 조건을 더 충족해야 했다. 첫째, 사랑하는 총통의 초상화 앞에서 거행되어야 했다. 어차피 완벽하고 인종적으로 순수한 독일인의 세대는 그를 위해 자라나는 것이었으니까. 둘째, 나치의 성경이라 할 수 있는 『나의 투쟁』이 — 물론 가장 명예로운 자리에! — 반드시 함께 놓여 있어야 했다.

가슴에 하켄크로이츠를 품은 아버지

이제 『아버지들의 그림자』의 저자에게 잠시 주목해 보자. 옌스-위르겐 펜츠키는 리츠만슈타트(Litzmannstadt), 곧 1941년부터 나치 독일에 점령된 폴란드 우치(Łódź)의 시장을 지낸 베르너 펜츠키(Werner Ventzki)의 아들이다.

그는 자신이 세례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 곧 자신을 총통에게 봉헌하는 나치 의식을 치렀다는 사실을 태어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패전 이후 나치주의자들(옌스-위르겐의 부모는 노골적인 히틀러 신봉자였다)은 이런 관행에 대해 입 밖에 내기를 꺼렸다. 그가 자신의 은 숟가락(명명 의식 선물 중 하나)이 대체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캐물었을 때, 어머니는 설득력 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나치식  세례 의 실체: 교회도 성수도 없던 힘믈러의 SS 명명 의식

잠시 후, 또 한 명의 작은 아리아인이 '초인'의 공동체에 편입될 것이다.

1944년 SS에 의해 '세례'를 받은 펜츠키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부모의 과오를 덮으려 애썼다. 1960년, 2년간의 신앙 확인 과정을 거친 그는 베를린의 성십자가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버지의 과거, 그리고 자신의 탄생이 … 힘믈러의 명령에 따라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그는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전쟁 중 모든 SS 대원에게 다수의 자손, 곧 '건강한 피'의 공급을 책임질 의무를 부과했던 하인리히 힘믈러의 '출산 질서'는, 사실 내 부모에게 하나의 추가적 근거가 되어 내 탄생을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가족 정책 법규 속 SS의 구체적인 원칙들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의 신념과 정확히 들어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