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6년, 빅토리아 여왕의 가장무도회
1846년, 빅토리아 여왕이 18세기 복장을 주제로 한 가장무도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궁정 스타일리스트들은 높은 나무 굽을 만들 줄 아는 마지막 장인들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그만큼 그 기술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던 것입니다. 플랫슈즈가 유행하던 당시에는 몇십 년 뒤 굽이 다시 돌아와 약 100년 동안 신발 시장을 지배할 거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신발은 원래 남녀 구분이 없었다
신발의 역사는 여성 드레스의 변천사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정 계층이나 직업과 연관된 몇몇 기발한 모델을 제외하면, 같은 스타일의 신발은 수십 년씩 반복해서 신겼고, 긴 치마는 이 분야에서의 실험을 부추기지 않았습니다. 신발은 흔히 남녀 공용이었으며, 왼쪽과 오른쪽 발을 구분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좌우를 구분한 신발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입니다. 요컨대 다양한 상품을 갖춘 신발 가게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발명품인 셈입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의 한 장면
등자에 다리를 고정하기 위한 굽
돌이켜보면, 하이힐을 유행하는 플랫슈즈의 손쉬운 대안으로, 혹은 현대처럼 여성들이 특별한 날에 신는 신발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이힐의 시작은 남성 옷장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초기의 기록 중 하나는 페르시아 기병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굽에 관한 것으로, 등자에 다리를 더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굽 덕분에 병사들은 등자에 기대어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무기를 더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었습니다. 굽의 이러한 실용적 용도는 가죽 승마 부츠의 형태로 유럽에도 전파되어 남녀 모두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제임스 스튜어트, 레녹스 및 리치먼드 공작
붉은 굽은 왕의 특권
유럽에서 굽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동양 문화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17세기에 굽은 남성 패션에 등장했고, 이 유행을 따르려던 여성들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심지어 남자 같다고 비웃음을 샀습니다! 최초의 굽은 높이가 약 5센티미터 정도로 상당히 묵직했으며, 당시 유행에 맞춰 붉은색으로 칠해지곤 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 붉은 굽이 오로지 왕실에서만 허락된 특권이었습니다. 여기서 밑창이 붉은 유명한 루부탕 스틸레토가 떠오릅니다. 그것을 신은 셀럽들은 17세기 귀족이 된 기분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요?
18세기, 굽의 황금기
18세기에는 남성용과 여성용 굽이 모두 더욱 발전했고, 전례 없는 높이에 도달했습니다. 드레스 아래에 받쳐 입는 커다란 틀, 이른바 파니에는 치마를 크게 벌려 여기저기서 여성의 발이 살짝 드러나 보이게 했고, 이는 곧 신발 장식이 점점 화려해지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한편 굽은 발의 착지 면적을 줄여 실제보다 작아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신데렐라 동화의 가장 유명한 버전이 17세기와 18세기가 교차하는 시점에 샤를 페로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겠죠!

구스타브 도레, 동화 <신데렐라> 삽화
18세기 전반은 적어도 하이패션의 기준에서는 하이힐이 독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위 계층은 하이힐이라는 비실용적인 아이템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값이 저렴한 신발에서는 낮은 형태의 굽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18세기 말로 갈수록 여성 신발의 굽은 얇아지고 높아졌습니다. 1770년대와 1780년대가 교차하는 시점, 발을 완전히 드러내는 짧은 치마 드레스가 잠깐 유행하면서 굽은 최고 높이에 도달했습니다. 이후 굽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9세기 초 몇 년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가루를 뿌린 머리처럼 몰락한 프랑스 귀족과 구식 사고방식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발(플랫슈즈)은 세기가 바뀌며 장려되기 시작한 건강하고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에도 더 잘 어울렸습니다. 아니면 긴 치마가 다시 굽을 이겼을까요? 결국 굽이 세기 중반에 다시 돌아온 것은 드레스 아래에 받치는 틀이 유행하면서였으니, 역사는 원을 그리며 돌아오기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19~20세기, 여성의 전유물이 되다
19세기 말, 굽은 여성 옷장의 필수 요소가 되어 플랫슈즈는 보통 어린 소녀들만 신는 신발이 되었습니다(운동화는 예외). 흥미로운 점은 19세기 모델 중 18세기 선배들의 높이에 도달한 사례가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에는 100년도 더 된 패턴에서 영감을 받은 신발에서 그런 높은 굽이 다시 발견됩니다. '루이 스타일' 신발은 높은 굽뿐 아니라 파스텔 색조, 화려한 자수와 버클로 로코코 스타일을 충실히 재현했습니다. 빈티지 스타일이 다시 유행했던 시절이라 할 수 있겠죠.
20세기는 여성 굽의 다양한 실험과 혁명의 시대였습니다. 1950년대 스틸레토 하이힐의 탄생부터 1990년대의 미래주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디자인까지 말입니다. 굽을 허영심과 맹목적인 유행 추구와 결부시키던 시선은 점차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굽이 원래 출발한 곳이 남성 패션이었던 만큼, 오늘날에도 남성 패션에 굽이 자리를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발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요소 하나가 이토록 큰 화제를 불러일 수 있다니 참으로 흥미로운 일입니다.
저는 오래된 신발 카탈로그를 넘겨볼 때면 종종 향수를 느낍니다. 현대의 신발보다 편안함이나 발 모양에 대한 적합성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형태에 일종의 부드러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모델이 옷과 마찬가지로 그림으로만 소개되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