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은 연대기뿐 아니라 전설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전투로 단련되고 혹한을 견뎌내며, 머나먼 해외 원정 경험이 풍부했던 스칸디나비아 전사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깊은 매력을 지닌 존재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바이킹의 유산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바이킹은 주로 오늘날의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게르만족은 그들을 '아스코만(Ascomann, 물푸레나무의 백성)'이라 불렀고, 켈트족은 '로클란나흐(Lochlannach, 물의 백성)'라 칭했습니다. 여기에 '불의 백성'이라는 별명까지 더할 수 있겠습니다. 겨울철에는 두꺼운 얼음에 덮이는 땅에 살았지만, 그들은 무기를 제련하는 기술을 완벽하게 익혔고, 대륙의 먼 곳까지 탐험할 수 있는 배를 건조할 줄 알았으니까요.
약탈하고, 유린하고, 정복하다
무자비한 정복자, 정복한 땅에 강압적으로 법과 질서를 세운 식민 지배자, 계산적이고 야만적이며 거친 자들. 오늘날 널리 퍼진 바이킹의 이미지는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늘 그렇듯 매우 불완전합니다. 머나먼 원정이 약탈 행위일 수도 있었지만, 같은 시기에 그들은 상인이었고 때로는 정착민이기도 했습니다. 공격적인 확장은 주로 전문화된 약탈 집단의 몫이었습니다.

핏빛 물결의 약탈자라는 고정관념은 대중의 의식 속에 굳건히 자리 잡았습니다.
피와 유린으로 점철된 정복 행위는 독특한 권력 승계 방식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장남만이 아버지의 가보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다른 아들은 스스로 새 영토를 정복하여 부와 명예,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쟁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초의 원정은 8세기, 정확히는 서기 793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해 그들이 잉글랜드 연안 린디스판 섬에 나타난 것이죠. 아일랜드-스코틀랜드계 수사 에이단이 세운 수도원이 불타고 약탈당한 이 사건은 역사상 첫 번째 전사들의 습격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바이킹에 대한 공포의 평판은 날로 커져갔습니다.
건설하고, 교역하며, 제국을 일구다
그러나 바이킹은 뛰어난 전투력뿐 아니라 놀라울 정도의 기업가 정신으로도 유명했습니다. 항로를 개척하며 그들은 무역 접점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약탈을 목표로 한 야만적인 집단 외에도, 스칸디나비아 전사들 사이에는 가정을 능률적으로 꾸려나간 농부들과 물물교환 방식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던 영리한 상인들이 있었습니다. 북방 민족이 내놓은 것은 주로 목재와 철이었고, 그 밖에 물개 가죽, 고래 창자, 엄니와 해우의 뼈 등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갖고 싶어 한 것은 포도주, 도자기, 금, 은, 그리고 소금이었습니다.
바이킹은 자연 자원을 완벽하게 활용하는 데에도 능했습니다. 강철로 벼려진 드세고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검과 도끼는 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무기였습니다. 사가(영웅 서사시)에서는 이를 '피의 번개' 또는 '전투의 불꽃'이라 불렀죠. 무기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지는 일종의 가보였으며, 신화 속 문양이 새겨진 단단하고 둥근 방패가 방어구로 쓰였습니다. 전쟁은 오랜 전통의 일부였던 셈입니다.
오늘날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조상은 배 건조의 달인으로도 손꼽혔습니다. 톱 없이도 마치 예술 작품 같은 구조물을 만들어냈으니까요. 동시에 그것은 떠다니는 요새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군사 전술은 선박의 높은 기동성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신속하고 기동성이 뛰어난 연안 전투선 '드라카르(drakkar)'와 원양 항해용 대형선 '크나르(knarr)'를 적절히 활용한 것이죠.
북방의 전사들은 여행을 사랑했고, 그들이 세운 정착지는 곧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노샘프턴, 케임브리지, 그리고 더블린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그곳에 정착해 자신들의 풍습과 문명의 성취를 전수했고, 자신들의 거점을 세워 나갔습니다. 식민 개척의 성과는 시야를 넓히고 경계를 허물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단정한 수염, 하지만 뿔 달린 투구는 없었다?
호전적인 민족이라면 야만적이고 공격적일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습니다. 거의 짐승과 같은 기질과 냄새마저 풍길 것처럼요. 그러나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물들은 이런 고정관념을 산산조각 내고 있습니다. 바이킹 정착지에서는 빗, 면도날, 집게, 가위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은 치실을 사용하며 치아 관리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풍성하고 위풍당당하기까지 한 수염도 뺨이 드러나도록 멋지게 다듬어야 했습니다.
또한 바이킹은 적을 겁주기 위한 뿔 달린 투구를 쓰지 않았습니다. 일상에서는 주로 양모나 가죽 모자를 썼고, 전투 시에는 눈과 코를 보호하는 특수 형태의 철제 투구를 착용했습니다. 뿔 달린 투구의 이미지는 실제 무장 장비가 아니라 오딘을 비롯한 신화적 묘사와 예술적 표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9세기 스웨덴 화가 요한 아우구스트 말름스트룀이 아이슬란드의 '프리드티오프 사가' 삽화에서 전사들을 이런 식으로 그린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물의 뿔이 실제로 쓰인 곳이 있다면 그것은 연회장이었습니다. 지친 전사들이 꿀술의 풍미를 만끽하던 자리에서 말입니다. 꿀술은 약간의 단맛이 감도는 맥주와 비슷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이었죠.

라그나르의 아들들 앞에 선 아엘라 왕의 사절들
미지를 향한 항해와 북방민족의 지배
바이킹의 팽창은 토착 인구의 증가, 그리고 잉글랜드·프랑스·스코틀랜드 같은 국가들의 정치적·조직적 취약성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내분으로 분열되고 무질서했던 이들 국가는 바이킹에게 좋은 기회였죠. 시간이 흐르면서 스칸디나비아 전사들은 자신들의 대표를 왕좌에까지 앉힐 수 있었습니다. 11세기에는 잉글랜드 영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고, 크누트 대왕이 통치했습니다. 다만 이는 평화로운 통치는 아니었고, 앵글인과 색슨인의 반란에 시달렸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인 1066년, 바이킹의 피를 이은 정복자 윌리엄이 왕좌에 올랐고, 이후 300년간 잉글랜드를 통치하게 되는 노르망디 왕조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북방민족의 원정은 북해를 넘지 않았지만, 식욕은 먹으면서 자라는 법이죠. 이렇게 해서 바이킹은 서기 800년경 페로 제도에 상륙했고, 874년에는 아이슬란드에 도달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그린란드였고, 나아가 아메리카 대륙이었습니다. 북유럽인의 북미 식민 개척은 10세기 초, 전사들이 북대서양 연안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래브라도 반도와 뉴펀들랜드가 바이킹 제국의 수도가 될 뻔하기도 했죠. 그러나 이 공동체는 안정되지 못했고, 결국 식민지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의 진실은 북유럽 식민 역사에 관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전한 기록인 '빈란드 사가'에 남겨졌습니다.
살아남은 바이킹 – 대중문화 속 북방민족
역사적 진실은 후속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전설, 사가, 설화 속에 응축됩니다. 그 기록에는 피로 물든 역사와 절대적인 이익 추구의 욕망이 담겨 있지만, 동시에 가족 공동체의 안전 같은 고결한 동기로 싸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이야기 모음 속에는 진짜 보석들이 숨어 있습니다. 코믹북 '돌아온 스벤'을 떠올려 볼까요? 이야기는 990년, 스코틀랜드 북서부에 약 2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우터헤브리즈 제도를 배경으로 전개됩니다. 긴 방황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한 신비로운 남자의 운명을 우리는 그곳에서 마주합니다. 주인공 스벤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보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 그리고 왕위를 되찾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미지의 바다로 항해하는 바이킹들. 코믹북 '노스랜더스' 중에서
'앵글로색슨 사가'는 기념비적인 코믹북 사가 '노스랜더스(Northlanders)'의 첫 합본으로, 이제는 사라진 세계의 모습을 자극하고, 도발하고, 형상화합니다. '아이슬란드 사가'에서는 아이슬란드의 격동의 역사에 초점을 맞춥니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이 9세기 말 아이슬란드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들은 권력을 확장하던 노르웨이 왕들로부터, 가난과 불의로부터 도망쳐 나왔습니다. 새로운 땅에서 자유와 비옥한 토지를 찾았지만, 그들이 발견한 것은 암석과 서리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장식은 '유럽 사가'입니다. 거대한 바이킹 군대와 함께 포위된 파리 성벽 아래에 서게 되죠. 피로 물든 복수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옛 신들과 밀려오는 기독교의 대결을 목격하고, 북방의 깊은 숲속으로 홀로 들어간 사냥꾼을 쫓는 사냥에 동참하며, 심지어 동쪽 끝 볼가강까지 여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극히 일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마이클 히스트가 제작한 드라마 '바이킹스(Vikings)' 역시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습니다. 전설적인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 그의 후계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시리즈는 이달 방송되는 시즌 6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넷플릭스가 이미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 '바이킹스: 발할라(Vikings: Valhalla)'를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바이킹스' 종영 100년 후의 세계입니다. 주인공은 가장 유명한 바이킹들이 맡게 됩니다. 그린란드에 노르드 정착지를 세운 아이슬란드 출신 망명자이자 붉은 에리크의 아들 레이프 에릭슨, 미지의 원정에서 그를 따라다닌 여동생 프레이디스 에이릭스도티르, 므시슈코 2세 시대 키예프 루스의 폴란드 침공에 참전하고 1045년부터 노르웨이 전체의 왕이 된 하랄 3세 하르다라다, 그리고 1066년 잉글랜드 왕좌를 손에 넣은 노르망디 공작 정복자 윌리엄이 그들입니다. 바이킹은 그렇게 불멸로 남습니다. 기억 속에서만이 아니라 대중문화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 레이먼드 이언 페이지(Raymond Ian Page), 『Vikings』, Book World
- 토니 앨런(Tony Allan), 『Vikings: Life, Legends, and Art』, National Geographic
- 엘세 뢰스달(Else Roesdahl), 『Viking History: Nations and Civilizations』, Marabud
- 브라이언 우드(Brian Wood), 『Midnight Peo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