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서는 불과 70년도 채 되지 않아 재건되거나 아예 새로 지어진 도시에서 사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우리는 흔히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도 수도와 대도시를 무사히 지켜낸 다른 유럽 국가들을 부러워하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부러울 일일까요? 프랑스인들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스스로 수도를 완전히 헐어버렸으니까요.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오늘날의 파리는 그리 오래된 도시가 아닙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센 강변에는 현재의 프랑스 수도와 이름만을 공유하는 완전히 다른 도시가 서 있었습니다. 당시 방문객들은 그 모습을 마치 방치된 농장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과 무너져가는 허름한 집들로 가득했던 옛 파리는 결코 ‘세계의 수도’나 ‘빛의 도시’라 불릴 자격이 없어 보였습니다. 세월이 쌓인 독특한 정취는 있었지만, 근대화를 추구하던 프랑스 당국의 눈에는 걸림돌이었고, 특히 가난하고 비좁은 골목길에서는 소요와 반란이 쉽사리 일어났습니다.
옛 파리의 파괴
결국 나폴레옹 3세 황제(재위 1852~1870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파리 대개조를 명령합니다. 사실상 자신의 수도에 내린 사형 선고였습니다.

옛 파리: 혼란스럽고, 기발하며, 냄새도 좋지 않았던… (1840년대)
마우고자타 구토프스카-아담치크와 마르타 오제시나가 저서 『벨 에포크, 예술과 사랑의 도시 파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1만 8천~2만 동에 달하는 건물의 절반이 철거되었고, 파리의 60%가 완전히 새롭게 변모했다”(38쪽).
대개조 사업은 1853년에 시작되어 1870년까지 이어졌으며, 모든 공사는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권한을 부여받은 조르주 오스만(Georges Haussmann) 남작이 총괄했습니다. 그러나 도시 철거 과정에서는 끔찍한 비리가 만연했습니다. 먼저 세입자들이 거리로 내몰렸고, 교활한 투기꾼들은 국가 보상금을 노려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들은 철거 예정인 집을 헐값에 사들여 되팔며 막대한 보상금을 챙겼고, 보상금을 대신 수령할 명의자에게 건물을 임대해주기도 했습니다. 임대료를 올리고, 이미 죽은 사람의 이름을 호적으로 올리고, 심지어 가짜 가게를 차리기까지 했습니다. 모두 보상금을 불리기 위해서였습니다.”(43쪽)

그리고 새로운 파리: 질서 정연하고 위엄 있게, 12개의 직선 도로가 도시를 가로지른다… (1900년)
광적인 속도로 동네 전체가 평지로 바뀌었고, 기존 주민들은 새로 생긴 교외 지역으로 내몰렸습니다. 그때부터 파리의 중심지는 돈 있는 사람들만의 공간이 되었고, 당국 역시 이 사업 전반에서 상당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애원하던 것은 기존 주민들과 일부 지식인들뿐이었습니다. 에밀 졸라는 체념하듯 이렇게 적었습니다. “파리 전체가 군도에 베이듯 갈라져, 열린 혈관처럼 수십만의 인부와 미장이들에게 일거리를 먹여주고 있다”고.
드디어 찾아온 청결과 질서
새로운 파리는 어떤 의미에서 질서와 기하학에 바치는 경의였습니다. 두 저자에 따르면 “오스만 남작은 직선 숭배를 신봉해 장애물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과감히 없애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날 샹젤리제 거리의 모습 역시 그가 남긴 유산이다”고 합니다.
그는 또한 부롱 숲(Bois de Boulogne)과 방센 숲(Bois de Vincennes)을 비롯해 새로운 공원·정원·광장 조성을 명령했는데, 이 녹지 공간들은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하며 파리 시민의 휴식처가 되었습니다(38~39쪽).
동시에 파리는 깨끗하고 질서 있는 도시여야 했습니다. 하수도망의 총 연장은 여섯 배로 늘어났고, 상수도망이 도시 전역을 덮었으며, 철거된 가옥의 터 위에는 100km에 달하는 새로운 거리가 조성되었습니다.

아름답고 넓은 대로가 들어서기 전에는 대대적인 철거가 먼저 필요했다…
도심에는 무려 3,000개(!)의 상점을 갖춘 특별한 상설 상점가가 들어섰고, 모든 신축 건물은 극도로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건물 높이는 일정해야 했고(20m를 넘지 않음), 외관 양식은 통일되어야 했으며, 지붕은 정해진 각도로 기울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완전히 새로운 도시’(40쪽), 즉 현대적이고 안전하며 위생적인 대도시였습니다.
낡지만 진짜였던 파리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오늘날 그런 도시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설상가상 그것은 전쟁의 화산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한 결정으로 지워졌다는 점입니다.
출처
Małgorzata Gutowska-Adamczyk, Marta Orzeszyna, 『벨 에포크, 예술과 사랑의 도시 파리』, PWN 출판사, 바르샤바 2012, 37~52쪽.